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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글/- 묵상 글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by 하늘 호수 2024. 10. 15.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떼이야르 드 샤르댕 지음

김진태 옮김 / 이병호 감수

 

봉헌

 

주님, 이번에는 앤Asine 숲 속이 아니라 아시아의 대초원 안에 들어와 있지만, 또다시 저는 빵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들을 뛰어넘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순수 실재를 향해 저 자신을 들어 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

저쪽 지평선에서는 이제 막 솟아오른 태양이 동쪽 하늘 끝자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불이 찬란한 빛을 내며 떠오르면, 그 아래 살아 있는 땅의 표면은 다시 한번 잠에서 깨어나 몸을 떨며 또다시 그 두려운 노동을 시작합니다. , 하느님, 저는 새로운 노력이 이루어 낼 소출들을 저의 성반에 담겠습니다. 또 오늘 하루 이 땅이 산출해 낼 열매들에서 짜낼 액즙을 이 성작에 담겠습니다.

이제 곧 지구 곳곳으로부터 올라와 영()을 향해 모아질 온갖 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영혼의 깊은 속, 그것이 저의 성반이며 성작입니다. 새날을 맞이하라고 지금 빛이 흔들어 깨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들과 신비로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저는 지금 저를 먹여 길러 주고 또 저의 삶을 풍요롭게 하도록 당신께서 저에게 주신 사람들 하나하나를 보며 사랑합니다. 그 다음으로, 저는 또 다른 가족을 떵리며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마음, 학문 연구, 사랑 등의 동질성을 통해, 너무나 다른 요인들을 묶어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가족이 울타리인 듯 저를 서서히 에워싸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 좀더 막연하고 일반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고 모두를 감싸 안으면서 일일이 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살아 있는 인류 전체를 저의 눈앞에 세웁니다. 제가 알지 못하지만 저의 가까이에서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 오는 사람들과 가는 사람들. 누구보다도 사무실, 실험실, 공장에서 일하면서, 진리에 대한 꿈을 가지고, 혹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지상 현실의 진보를 정말로 믿는 사람들. 그래서 오늘도 빛을 향해 열정적 탐색을 계속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가지런하거나 혼란스럽거나 간에, 쉬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 거대한 rnsnwd 앞에서 저희는 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특별한 요동도 없이 나아가는 이 거대한 물결 앞에서는 믿음이 굳은 사람이라 해도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저의 온 존재가 바로 이런 깊이에서 올라오는 속삭임에 공명하는 것입니다. 이 하루 동안 더욱 커질 모든 ᅟᅥᆺ들. 이 하루 동안 더욱 작아질 모든 것들. 오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들까지도 주님, 이 모든 것을 한껏 저의 품속에 끌어모으려 하는 것은, 그것들을 당신께 봉헌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저의 봉헌물이고, 당신께서 바라시는 단 하나의 봉헌물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자기네가 수확한 것 가운데 맏물을, 또 가축들 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을 당신의 성전에 봉헌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봉헌물, 신비롭게도 당신께서 배고픔을 달래고 목마름을 해소하시기 위해 날마다 필요로 하시는 봉헌물은 이 세상의 성장, 우주 만물의 진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걸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그 성장뿐입니다.

주님, 새날의 첫 새벽에 당신께서 만드신 창조계 전체가, 당신의 이끄심에 따라 움직이며 모든 것을 다 올려 봉헌하는 이 거대한 제병을 받으소서. 저희의 노동인 이 빵이 그 자체로서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부스러기일 뿐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고통인 이 술 역시 다음 순간에 사라질 하찮은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볼품 없는 물질 덩어리 그 깊이에 당신께서는 거룩함을 향한 어떤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을 숨겨 두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느낌으로 감지합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저희는 모두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저희를 <하나>가 되게 해 주소서.”

제가 비록 당신의 성인들처럼 영적 열망을 지니지도 그분들 같이 드높은 순결에 이르지도 못했지만, 당신께서는 저에게 칙칙한 물질 덩어리 속에서 꿈틀대는 모든 것들을 향해 억누를 길 없는 애정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천국의 자녀이기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더, 땅의 아들임을 의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 아침 제 어머니의 희망과 비참을 가슴에 품고 마음속으로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렵니다. 거기서 저는 당신께서 제게 주셨다고 확신하는 사제품의 힘을 빌어 떠오르는 태양 아래 인간 육체의 세계에서 이제 곧 태어날 것과 죽어 갈 것들 위에 <>을 끌어 내리겠습니다.

 

 

세계 위의 불

 

존재가 발원한 샘, 그것은 불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불이 땅덩이 깊숙이에서 솟아오른다는 착각에 붙들려, 생명의 빛나는 궤적을 따라 그 불길이 댕겨진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자비로이 저희의 이 생각이 거짓이요 착각임을 알게 해 주시고, 당신을 발견하려면 저희가 이 착각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태초에 지성과 사랑을 갖추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이 있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는데, 이 말씀은 물질세계에 존재하게 되는 것들을 다 지배하고, 그것들에 꼴을 갖추어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태초에 차가움이나 어두움이 아니라 <>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 속에서 빛이 서서히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 어떤 것도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이 있어서, 끈질기게 그러나 어김없이 저희의 어두움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저희로 말하며, 저희 자신은 어두움이요. 허공일 뿐입니다. 하지만, 나의 주님, 당신께서는 영원한 밀리외(milieu,중심,영역)의 바탕이시며 그것을 와해되지 않게 잡아 두고 지속시키는 분이십니다. 시간의 흐름도 공간도 없는 이 중심milieu에서 우주는 솟아 나오고 마지막 완성을 향해 성장해 갑니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저희 눈에 아찔할 만큼 거대해 보이는 한계선마저 뛰어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존재입니다. 어디에나 존재들만이 있습니다. 창조물의 붕괴와 그 원자들의 충돌 이외에는, 어디에나 존재밖에 없습니다.

타오르는 영, 위격적이고 본원적인 불, 합일의 실제적 지향점, 범신론자들이 꿈꾸는 멸아적융합滅我的融合fusion destructrice에 비해 이 실체야말로 비교할 수 없이 더욱 사랑스럽고 바람직합니다. 그러하오니 영이시여, 불이시여, 다시 한번 내려오시어 새로 만들어진 이 가냘픈 물질 덩어리에 혼을 불어넣어 주소서. 세상은 오늘 이 새로운 피조물로 새 단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저희가 아주 작은 일에서마저 당신께서 하실 일에 참견하거나 미리 내다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께서만 시작하실 수 있으십니다. 저의 기도 역시 그럴 뿐 아니라, 저의 기도야말로 그것을 마음에서 솟아나게 해 주시는 분은 당신이십니다.

빛나는 <말씀>, 불타오르는 <>, 모든 것들 안에 당신 자신의 숨결을 불어 넣으시는 님이시여, 간구하오니 저희 위에 당신의 그 손을 얹어 주소서. 힘이 넘치시고, 자상하시며, 어디에나 계신 그 손, 저희 인간들의 손처럼 지금은 여기를 만졌다가 다음에는 저기를 만지는 식으로 하지 않으시고, 깊은 속과 전체, 현재와 과거를 만져 주시고, 저희를 싸고 있는 거대 세계와 저희 안의 가장 깊은 속을 한꺼번에 만져 주시는 그 손을 저희 위에 얹어 주소서.

그 놀라운 손의 위대한 힘을 내려 주소서. 그리하여 저의 마음 안에 모아들여 이제 송두리째 당신께 봉헌하는 세상의 온갖 노작勞作들로 하여금 당신께서 마음에 두고 계신 그 위대한 세계를 향해 수렴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변용變容시켜 주소서. 다시 꼴 지워 주시고, 바루어 주시며, 그 모태母胎와 원천의 깊이에까지 가 닿을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 주소서. 당신의 창조물들이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줄기에서 가지가 돋아나듯, 만물의 근원이신 당신께 뿌리를 내리고 끝없이 새롭게 전개되는 진화의 한 부분으로서만 가능하게 되는 것임을 당신께서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저의 입술을 통해서 이 세상의 노작 위에 두 겹의 효과를 내는 당신의 말씀을 내려 주소서. 당신의 말씀이 아니시면, 저희의 지혜와 경험이 쌓아 올린 것들은 한 순간에 무너져 산산조각이 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말씀하시면, 저희의 끝간데 없는 상상과 생각 그리고 이 거대한 우주와의 만남이 질서를 얻어 하나로 모아집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 오늘 하루 동안에 새로이 돋아나고, 자라나고, 꽃피고, 익어 갈 모든 생명체들 위에 다시 한번 말씀해 주소서. “이것은 내 몸이다.” 또 모든 죽음의 힘, 분해되고, 시들고, 잘려 나갈 모든 것들 위에 (가장 숭고한 신앙의 신비가 아닌가!) 명령하여 주소서. “이것이 내 피이다.”

 

 

세계 안의 불

 

이제 이루어졌습니다.

불이 다시 한번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벼락과 천둥이 치듯이 요란한 소리는 전혀 없었습니다. 주인이 자기 집으로 들어오는데 우당탕 대문을 부숴뜨리던가요? 지진도 우레 소리도 없었습니다. 불꽃은 온 세상을 안으로부터 밝혀 주었습니다. 불꽃은 온 세상을 안으로부터 밝혀 주었습니다. 이 빛은 만물을 따로따로, 또 한 묶음으로, 꿰뚫고 들어가 찬란하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가장 작은 원자의 최심最深으로부터 가장 보편적인 법칙의 거역할 수 없는 영역에 이르기까지 이 빛이 스며 들어갔습니다. 이 빛은 각 층의 물질 단위, 에너지, 저희의 우주를 하나로 이어주는 끈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파고들었습니다. 이 일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주가 저절로 불길을 내며 솟아났다고 상상하고 합니다.

오늘 생겨나는 새 인류 안에서 <말씀>은 당신 자신의 탄생 행위를 끝없이 연장하고 있습니다. 또 세계 속에 말씀이 들어오셨다는 그 사실로 인하여, 물질세계의 거대한 바다는, 미미한 파랑마저 일으키지 않고, 생명을 얻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말로 형용할 길이 없는 이 변용에서 저희는 작은 떨림조차 감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체적 말씀이 가 닿자 우주라는 거대한 제병은 몸으로 변화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신비롭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나의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육화肉化를 통해 모든 물질은 이제 육화되었습니다.

저희의 생각, 저희의 인간적 경험을 통해서, 저희는 옛날부터 우주가 저희의 몸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낌새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희의 몸처럼, 우주 역시 그 굽음의 신비, 그리고 그 눈의 한없는 깊이를 통해서 저희에게 크나큰 매력을 행사합니다.

저희의 몸처럼, 우주 역시 해체되고, 저희의 분석 시도, 저희의 점증적 쇠진, 그리고 그 자신의 지구성持久性으로 인해서 저희를 피해 갑니다.

저희의 몸처럼, 우주 역시 저희에게 이미 주어진 것 그 너머를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칠 때에만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주님, 저희는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저희 안에 멀리 떨어져 있음과 가까이 다가가 있음, 이 두 방향의 혼란스런 느낌을 안고 있습니다. 또 저희가 대를 거쳐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슬픔과 희망의 정감 속에서도, 이름도 없고 잡혀지지도 않으면서 저희 주위를 떠돌고, 그러면서도 또 모든 것들 속에 깃들어 있는 그 <현존>의 한 가운데에 서서, 애타는 바람을 품고 울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 갈망보다 더 처절한 슬픔은 없습니다. “그분을 짚을 수만 있다면”si forte attrectent eum.

주님, 제 눈에는 이제 세계의 축성을 통하여 우주의 표면에 편만遍滿한 광채와 향기가 당신

안에서 몸과 얼굴의 윤곽을 드러냅니다. 저의 정신이 더듬어 찾아 나가던 가운데 언뜻 보았던 것, 저의 마음이 실현의 가망도 없이 막연한 갈망하던 것, 그것을 당신께서는 지금 제 앞에 장엄하게 펼쳐 보여 주십니다. 당신의 창조물들은 서로 하나로 맺어져 있어서 그 가운데 어떤 것도 자신을 싸고 있는 다른 것들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게 되어 있거니와,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들이 모두 하나의 중심 실체에 매어 있어서, 그 모두를 함께 떠받치고 있는 참 <생명>이 그것들을 궁극적으로 지탱시켜 주고 하나가 되게 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 계시의 거침없는 힘으로 저희의 유치하고 소심한 생각의 틀을 깨끗이 부수어 주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하잘 것 없는 몸뚱이를 두고 그것만이 가장 크고 생명에 차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소서. 우주를 이해해 가는 장엄한 도정에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 비해 하루가 다르게 큰 진보를 이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을 지탱시켜 주시는주 예수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지고至高의 영혼으로, 당신 창조물의 물리적 중심으로 보여 주소서. 저희에게는 이것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임을 당신께서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로 말씀드리자면, 저를 속으로 파고들거나 스쳐 지나가는 아주 작은 에너지마저, 당신의 실제적인 <현존>이 거기에 생명을 주고 부드럽게 하며 덥혀 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저는 골수에 사무치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서 얼어 죽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나의 하느님, 당신께서 수만 가지 방법으로 저의 눈을 열어 주시고 이끌어 주시어, 만물 안에 있는 기막힌 단순성을 발견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어린 시절, 당신께서 제게 심어 주신 갈망을 조금씩이지만 착실하게 키워주셨고, 차츰 나이가 들면서는 제 삶의 도정에서 때맞춰 점지해 주신 훌륭한 친구들의 영향으로 저의 정신을 비추어 여물게 해 주셨으며, 저에게 허락하신 즐겁거나 무서운 경험들을 통해 영이 깨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들을 통해서, 저는 만물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그 <중심>milieu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볼 수 없고, 숨조차 쉴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생명이 이제 막 놀라운 세력을 가지고 세계의 성사聖事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지금, 한껏 고조된 의식으로 저는 강렬하면서도 조용한 곡두vision를 맛보겠습니다. 마음속에 떠올라 저를 취하게 하는 이 세계가 얼마나 가지런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적절히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당신의 몸이 섭취하신 이 세계, 당신의 몸이 된 이 세계의 <>에 또 그 <깊이>에 서서, 제가 체험하는 것은 만물의 일성一性 속에 녹아 들어가기를 갈망하는 일원론자一元論者의 함몰 陷沒absorption도 아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신성 앞에 엎드려 있는 이교도의 감동도 아니며, 신비적 충동에 따라 이리저리 떠밀리는 정적주의자의 수동적 자아 포기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조들에서 식별해 낼 수 있는 함정은 피하면서, 저는 그 각각으로부터 기본 동력을 취하려 합니다. 당신의 편재遍在로부터 출발하여, 저는 이 세 가지 가공할 경향들을 하나로 종합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종합안에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 세 가지 성정들은 서로 섞이면서 피차 상대방을 바루어 줍니다. 그리하여 일원론자처럼, 저는 모든 것을 품에 끌어안은 <하나> 속에 깊이 잠겨 듭니다. 그러나 그 <하나>는 너무나 완벽하여, 그것이 저를 받아들이고 제가 그 안에 함몰될 때, 저는 그 안에서 제 개별성을 가장 완벽하게 이루어 내게 됩니다.

이교도처럼, 저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하느님을 예배합니다. 실제로 저는 이 하느님을 만집니다. 저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세계의 표면에서 그리고 그 깊은 속에서 저는 하느님을 만집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는 대로 그분을 만지려면 (단순히 그분 만지기를 중지하지 않으려고만 해도) 저는 언제나 더 나아가야 하고, 어떤 단계에 있어도 이미 잡은 것을 뛰어넘어야만 합니다. 어디에서도 쉬지 못하고, 언제나 피조물들로 인하여 앞으로 내몰리고, 어떤 지점에 도달했는가 하면 그것을 다시 추월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또 끊임없이 그것들로부터 초탈하는 여정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적주의자처럼, 저는 신적 환상에 빠져들어 그 감미로움에 도취됩니다. 하지만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할 때만 순간 순간 신의 뜻이 제게 계시 될 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야곱처럼 하느님과의 씨름에서 패배할 때에만 물질속에서 그분을 만질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본성이 조준되어 있는 궁극적이고 총체적인 목적 혹은 지향점이 저에게 밝히 드러난 이상, 제 존재 안에 있는 모든 힘과 능력들은 엄청나게 풍요한 단 하나의 음에 맞추어 저절로 진동합니다. 그리고 이 음 속에서 저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던 경향들이 힘도 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조화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 행함의 흥분과 수동적 당함의 환희, 소유의 기쁨과 소유를 뛰어넘어 더 멀리 뻗침의 희열, 커져감의 긍지와 자기보다 더 큰 것 속에 스스로 사라져감의 행복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세계의 액즙으로 배를 불리고 난 지금, 저는 <>을 향해 솟아오릅니다. 물질적 우주의 장려함을 옷 삼아 두르고 있는 이 영은, 이미 쟁취한 모든 것들을 아득히 뒤로한 저 멀리에서, 저를 향해 미소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몸의 신비 속에 빠져, 저는 과연 어느 쪽이 더욱 찬란한 행복인지를 분간할 수 없습니다. 물질을 지배하기 위한 <말씀>을 찾아낸 것이 더 큰 행복인지, 아니면 물질을 소유하여 하느님의 빛에 도달하고 거기에 복종하게 된 것이 더 큰 행복인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서 우주적 제병祭餠과 제주祭酒 속에 들어오시는 일이, 저에게 어떤 철학적 사유의 결과처럼, 그냥 사랑하고 아낄 것쯤으로 머물지 않고, 참으로 실제적인 <현존>이 되게 하소서. 저희가 좋아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당신께서는 엄연히 세상에 육화해 계십니다. 그리고 저희는 모두 당신 안에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결코 똑같이 가까이 계시지는 않으십니다. 저희는 모두 똑같은 세계에 들어와 있지만, 저희 하나 하나는 제각기 다른 소우주小宇宙를 이루고 있어서, <육화>는 그 하나 하나의 소우주에 따라 그 실현의 정도를 달리하며, 각기 고유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단에서 드리는 기도에서 저희는 축성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몸과 피가 되게 하시어...Ut nobis Corpus et Sanguis fiat...” 제가 주변의 모든 것들이 <말씀>의 몸과 피임을 믿는다면, 그렇다면 저에게 있어서는 (저에게 있어서만) 그 놀라운 투명 현상透明現象,diaphanie이 실현되는 셈입니다. 그리하여 저에게 일어나는 일과 저를 싸고 있는 물질적 요소마다, 유일한 <생명>의 환하고 따뜻함이 드러나 보이고, 그것들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비쳐 나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믿음이 흔들린다면, 빛은 한 순간에 꺼져 버리며 모든 것은 어둠 속에 갇히고 만사가 와해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지금 시작되는 오늘 속으로 이제 막 내려 오셨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제부터 일어날 사건들과 저희가 함께하게 될 체험들 속에서, 저희 하나 하나마다 당신의 현존 정도가 얼마나 무한한 등급으로 다르게 되나이까! 이제 곧 저와 저의 동료 인간들을 둘러싸게 될 똑같은 상황들 속에서 당신께서는 조금, 또는 많이, 혹은 더 많이 현존하시거나, 아예 씻은 듯이 현존하지 않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늘 하루 동안 어떤 독도 저를 해가지 못하게 하시고, 어떤 죽음도 저를 멸망시키지 못하게 하시며, 어떤 술도 저를 비틀거리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각 창조물 속에서 당신을 발견하고 감지해 내게 하소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주님, 저에게 믿음을 주소서.

 

 

영성체

 

<>이 세계의 한복판에 내려왔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저를 붙잡고 저를 삼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저는 그것을 그냥 바라만 보거나, 굳은 믿음으로 저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서 그 열기가 더욱 올라가게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오를 수 있도록 한 축성에, 있는 힘을 다하여 한 몫을 했다면, 이제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은 영성체(먹힘)에 동의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불길이 저를 삼키고 저를 살라 버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 저는 이제 타오르는 불길로 변화된 우주 안에서 당신의 현존 앞에 엎드립니다. 오늘 제가 가지게 될 모든 만남, 제게 닥칠 모든 일, 제가 이루어 낼 모든 것, 이 모든 것들의 흐릿한 그림 속에, 제가 진정으로 갈망하고 찾는 것은 주님 당신이십니다.

태어났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스스로 원한 일도 없는데, 휩쓸고 지나가는 길에서 만나는 것마다 모조리 파멸시키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이 무서운 기세로 움직이는 거대한 흐름 속에 돌이킬 수 없이 내던져진 자신을 문득 발견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나의 하느님, 제가 원하는 것은 당신만이 가지신 능력을 발휘하시어, 이 거대한 흐름을 거꾸로 돌려서, 알 수도 없는 방향으로 저를 이끌어 가려 벼르고 있는 이 거대한 물결 앞에서 느끼는 저의 공포를, 당신 자신으로 변화되는 데서 오는 넘치는 기쁨으로 바꿔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저는 당신께서 제 앞에 놓아주신 불타는 빵을 향해 조금도 망설임 없이 제 쏜을 뻗치겠습니다. 이 빵 속에 당신께서는 앞으로 자라나고 이루어지게 될 모든 것들의 씨앗을 심어 두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불타는 빵이 당신께서 저를 위해 마련해 두신 미래의 단초와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손을 뻗쳐 이 빵을 집어 먹음은 저를 저 자신에게서 무지막지하게 떼어 내는 그 힘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힘은 저를 위험에 빠뜨리고, 힘든 일을 하도록 내몰며, 생각을 끊임없이 쇄신시키고, 저의 감정을 결연히 초탈하도록 재촉할 것입니다. 이 빵을 먹음은 모든 일에 있어서 만물보다 더 높은 것에 대한 맛을 얻고 거기에 친숙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맛과 이 친숙함은 지금까지 제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던 모든 기쁨들이 더 이상 저에게 의미가 없게 만들 것입니다. 주 예수님, 저는 당신의 소유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 몸에 묶이고 싶습니다. 당신 몸의 말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저 혼자의 힘으로는 올라갈 꿈조차 꿀 수 없는 높이에까지 올라가고 싶습니다. 저에게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본능적으로 이 낮은 세계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천막을 치고 말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갑니다. 저의 동료 인간들처럼 저도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고 너무나 새로운 미래가 두렵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은 저를 그 미래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인간들처럼 저도 삶이 저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 몰라 불안합니다.... 세계를 팽창시키는 힘을 옷삼아 두르신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이 빵, 이 영성체가 저를 소심증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투쟁과 힘의 소용돌이, 당신의 거룩한 현존을 감지하고 체험할 능력을 키워갈 수 있는 이 소용돌이 속으로, 주님, 저는 당신의 말씀에 따라 몸을 던져 뛰어듭니다. 세계에 성장을 가져다주는 힘들 속에 숨어 계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세계는 어머니처럼 그 넓은 품속에 들어 올려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나의 하느님, 만일 당신의 나라가 이 세상 것이었다면, 저는 고통과 죽음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성장을 성취시켜 주는 저희 자신의 성장을 성취시켜 주거나, 저희 자신보다 더 저희에게 귀중한 다른 이들의 성장을 성취시켜 주는 그런 힘들에 단순히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당신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가 지금 달려가고 있는 목적지는 단순히 이것 혹은 저것 하는 개별 사물의 저편만이 아니라, 일체 있는 것들을 다 합쳐 놓고 보아도 여전히 그 너머에 있습니다. 세계는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훌륭한 것을 산출해 내기 위해서 산고를 겪는 것이 아니고, <만물에 앞서 계시는> <존재>와의 <합일>을 통해 자신의 완성을 이루어내기 위한 산고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아무리 오랫동안 자신을 키워가고, 아무리 위대한 지상적 가치를 위해 한 생을 바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우주의 불타는 중심에 결코 도달하지 못합니다. 주님, 세계가 당신과 결정적으로 합일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역전逆轉, 회전回轉, 중심 탈출中心脫出, 개인의 업적뿐 아니라 인류의 진보라고 생각되는 것들까지도 모조리 잠정적으로 붕괴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의 존재가 결정적으로 당신의 존재에 합치하려면, 제 안에서 몇몇 구조뿐 아니라 세계 자체가 죽어야만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감지할 수 있는 보상마저 깡그리 포기한 채, 아픈 소멸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성작에 모든 별리別離, 모든 한계, 모든 쇠진衰盡의 쓰거움을 쏟아 부어 주시면서, 당신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주님, 당신께서 제게 주신 빵을 통해 삶의 저쪽에 계신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은 갈망이 제 존재의 골수에 깊이 박혀 들어온 마당에, 이제 와서 제가 어떻게 이 잔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믿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사랑으로, 생명을 가져오는 힘뿐 아니라 죽음을 가져오는 힘까지도 활기차게 해 주지 않으셨다면, 조금 전의 세계 축성은 이미 미완未完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새로운 하루가 저에게 가져다줄 성장과 더불어, 끊임없이 우주를 침식하는 쇠약, 노쇠, 죽음 등과 함께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의 영성체도 지금 미완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더욱 솔직히 말하자면 저의 영성체는 그리스도교적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저의 이름으로 또 당신 자신의 존재에 가장 직접 참여하는 세계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우주를 구원이나 단죄로 이끌어 가는 이런 일들, 드러나게 혹은 조용히 다가오는 그 과정들을 저는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의 비좁은 자아를 당신의 현존으로 대치해 주실 것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저의 이 믿음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오 주님, 저는 그 가공할 분해 작용에 자신을 내어 맡깁니다. 세상을 죽이는 세력들 속에 숨어 계시는 예수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 세계는 죽어 가면서도 그런 사람을 마지막 힘을 다하여 자기의 거대한 가슴에 품어 줄 것이며, 그는 세계와 함께 하느님의 품속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기도

 

주 예수님, 세계의 이 모든 힘들에 가리운 채 당신께서는 실질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저를 위한 모든 것, 제 주변의 모든 것, 제 안의 모든 것이 되셨으니, 저는 하나의 기도 속에 제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기쁜, 제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을 한데 모으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위대한 종을 따라 불타는 말씀을 되풀이 하겠습니다. 제가 확신하거니와 내일의 그리스도교는 이 말씀 속에서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의 주님, 저를 당신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두어 주소서. 그리고 제가 당신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띨 때까지, 그리고 저의 자아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저를 안아 주시고, 불로 달구어 깨끗하게 해 주시며, 불을 질러 주시고, 들어 높여 주소서.” Tu autem, domine mi, include me in imis visceribus Cordis tui. Atque ibi me detine, excoque, expurga, accende, ignifac, sublima, ad purissimum Cordis tui gustum atque, ad puram annibilationem meam.

<주님>, 그렇습니다. 이 우주적 축성과 우주적 영성체라는 두 겹의 신비를 통해서 저는 마침내 온 마음으로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을 찾아냈습니다. 주 예수님, 제가 당신에게서 단지 2천년 전에 사셨던 분, 숭고한 윤리 교사, 친구, 형제만을 보고 마는 동안은, 저의 사랑이 그저 그렇고 어정쩡할 뿐이었습니다. 친구, 형제, 현인 정도라면 저희 주변에 더욱 그럴듯하고 한층 더 세심하게 배려해 주며 더욱 가까운 이들이 이미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순전히 인간적일 뿐인 존재를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바칠 수 있겠습니까? 세계 내적 요소들보다 더 위대한 세계가 처음부터 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존재에게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머리를 숙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는 아주 오랜 동안 제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 부활이 당신께 가져다준 초인간적 능력을 오늘 저는 확실히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땅의 온갖 능력들을 통해 당신의 모습이 드러나고, 이제 저는 당신을 저의 주권자로 인정하여 흔쾌히 자신을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의 영이 인간을 이끌어 가시는 솜씨는 참으로 묘합니다. 2세기 전 교회 안에서 당신의 심장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을 그토록 매료시켰던 것은 당신의 인간성 전체보다도 그 가운데 어떤 특정 부분, 제한된 어떤 요인을 발견한 것이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태가 갑자기 역전되어, 당신께서 당신의 심장을 저희에게 열어 보여(계시하여) 주셨을 때, 그것은 무엇보다도 저희가 나름대로 당신을 상상하며 빠져 들었던 어떤 잘못된 경향으로부터 저희를 벗어나게 해 주시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저희의 사람은 너무 편협하고, 테두리가 지나치게 분명하며, 무리한 한계를 부과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신 심장을 계시해 주신 것은 바로 이를 시정해 주시기 위한 배려였음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제가 당신의 가슴에서 감지하는 것은 활활 타는 용광로뿐입니다. 제가 그 작렬하는 불길을 응시하면 할수록, 저에게는 당신 몸의 형체가 흐려지고 그 대신 거대한 세력으로 활활 타는 세계만이 나타납니다.

영광에 찬 그리스도 물질의 속에 보이지 않게 퍼져 있는 영향력. 모든 복잡한 것들이 만나 서도 연결되는 중심. 세계처럼 강력하면서도 생명처럼 따뜻한 능력. 이마는 눈처럼 차고, 눈은 불같이 뜨겁고, 다리는 용해된 황금보다도 더 빛나는 당신. 처음이자 마지막이시고, 살아 계신 분이시자 돌아가신 분이시며, 부활하신 분이신 당신. 당신의 풍요한 일치 속에 모든 아름다움, 취향, , 존재 양식을 다 아우르시는 분. 저의 온 존재가 우주만큼이나 큰 갈망을 가지고 외쳐부르며 찾았던 것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나의 주님이요 나의 하느님이십니다.”

주님, 저를 당신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두어 주소서.”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너무나 강하여 그것이 제 내적 생활의 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절대적으로 당신의 밖에 있는 어두움은 그냥 허무일 뿐입니다. 주 예수님, 당신 몸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사자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당신의 사랑으로부터 쫓겨 나간 사람들마저, 실은 그들이 존속할 수 있도록 떠받쳐 주시는 당신 현존의 덕을 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희는 모두 우주적 중심milieu이신 당신 당에서 존재합니다. 모든 것은 이 우주적 중심milieu, 그 영향권 안에서 존속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저희는 미리 만들어진 다음이 당신으로부터 멀거나 가까운 곳에 배치된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 내키는 대로 당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혹은 가까이 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안에서 합일의 주체는 저희가 당신과 합일하는 정도에 따라 꼭 그만큼만 커 가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 존재의 가장 깊은 갈망을 들어 당신께 청하오니, 제가 감히 나의영혼이라고 말하는 이 실체의 원의를 들어주소서. “나의영혼이라고 했지만, 실은 그것이 저 자신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저는 하루가 다르게 더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깊은 실체를 향한 발걸음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들어가, 당신의 심장 한가운데에서도 제일 깊은 곳에까지 이르고 싶은 제 갈증을 보시고 저를 거기로 이끌어 주소서.

주님, 당신을 깊이 만날수록 당신의 영향력이 전 우주에 미침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 점을 가늠자로 하여 제가 당신 안에서 어디만큼 와 있는지를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제 주변의 모든 것들이 각기 제 모습과 개성으로 지켜 가지만, 다른 한편, 어떤 숨겨진 영혼에 의해 그것들이 모두 무한히 가깝고 무한히 먼 단 하나의 요소 안에 흩어져 있음을 볼 때, 하느님의 지성소至聖所에 철저히 붙들려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제가 모든 피조물의 하늘을 휘젓고 다니며 유유히 노니는 느낌을 가지게 될 때, 바로 그때 저는 세계를 향해 내려오시는 하느님 심장의 열선熱線안에서 우주의 심장이 가 닿는 그 중심점에 근접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 우주가 백열白熱하고 있는 그 지점에서, 일체의 내적 및 외적 활동들로부터 나온 불로 저를 태워 주소서. 이런 활동들은 당신으로부터 조금만 떨어져 있었어도 덤덤하거나 이쪽도 저쪽도 아니거나 적대적인 것이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자신에게 복속시킬 수 있는quae possit sibi omnia subjicere “에너지의 힘을 받으면, 그것들은 당신 심장의 물리적 깊이 안에서, 당신의 승리에 찬 활동의 천사들이 됩니다. 당신의 자력磁力으로써 이루시는 놀라운 조화의 솜씨를 통하여, 창조물의 아름다움과 부족, 달콤함과 심술, 한심한 나약성과 가공할 능력 등을 놀랍게 융화시킴으로써, 번갈아 가며 저의 마음을 환희와 쓰거움으로 채워 주시고, 순결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 주소서. 순결이란 사물로부터의 나약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아름다움을 두루 거쳐 뛰어오르는 도약입니다. 또 나의 마음에 사랑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소서. 사랑이란 실수할까 봐 결국 아무 일도 못하고 마는 소심증이 아니라, 저희 모두가 힘을 합해서 생명의 문을 열어제치고야 말겠다는 당찬 결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더 귀중한 것인데 - ‘당신께서 어디에나 계시다고 하는 사실편재遍在을 확신하며 우주를 향해 더욱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 당신을 찾아내고, 어떤 것은 적극적으로 행하고, 어떤 것은 수동적으로 당하는 등, 일체의 과정을 통해, 한 치 한 치 당신 자신 속으로 점점 더 깊이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 복된 <정열>을 제 마음에 부어 주소서.

나의 하느님, 저의 모든 기쁨과 성취, 제 존재의 목적과 제 삶의 의미는, 당신과 우주가 하나로 일치되어 있다는 이 단순하고도 기본적인 깨달음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야 더욱 훌륭한 자기 직분에 따라 당신의 순수 영을 선포하라고 하십시오. 그렇지만 존재의 밑바닥에서부터 애시당초 다른 소명을 받고 태어난 저로서는, 물질을 통한 당신 육화 존재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장延長 밖에는 그 어떠한 것도 선포할 뜻도 능력도 없습니다.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 속에서 투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영혼>이시여, 저는 당신 <>의 신비 이외에는 아무것도 선포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 몸의 가장 충만한 외연外延, 곧 당신의 능력과 저의 믿음을 통해서 찬란하게 불타는 용광로가 된 이 세계. 모든 것들이 용해되어 사라졌다가는 새로이 태어나는 그 불길. 당신의 창조적 인력이 제 안에서 용출시키는 온갖 재능, 저의 너무나 부족한 지식, 저의 수도 서원 修道誓願, 저의 사제직, 그리고 (이것이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데) 저의 인간적 확신. 이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저는 당신의 몸에 저 자신을 봉헌하며,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 죽기를 바랍니다.

 

1923년 오르도서Ordo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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