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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 전시 및 주보사진, 언론 연재

주교좌 명동대성당(성지)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 50선㊲]

by 하늘 호수 2025. 8. 26.

사적 제258호

명동은 대한민국 서울을 대표하는 곳이다. 만남의 장소이고 사시사철 국내외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객으로 북적이는 곳에 명동대성당이 우뚝 서 있다. 명동대성당은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심장으로, 한국 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다.

 

ⓒ명동성당의 전경

 

 
 

성당 건물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매일 봉헌되는 미사는 국내외 신자들로 가득하다. 제대와 스테인드글라스의 은은한 아름다움은 눈길을 머물게 하고, 각종 성 미술품은 고귀하고 성스럽다.

 

ⓒ미사 중

 

성당 아래에 있는 역사관은 1890년에 주교관으로 신축되었던 건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벽돌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곳은 2018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으로 새로이 문을 열고 한국천주교회의 태동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변천사를 다양한 유물과 자료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명동대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 건물로 그 문화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다.

 

ⓒ성모무염시태 앞 촛불 봉헌

 

가톨릭회관은 각종 성물이나 서적을 구매할 수 있는 매장이 있고, 교구청 지하에는 1898 광장과 서점, 카페 등이 있어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갤러리 1898에서는 연중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예술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명동성당과 파밀리아 채플은 한 주에도 혼례를 통해 여러 쌍의 부부를 탄생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천주교회는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했을 때를 출발로 본다. 하지만 그보다 4년이 앞선 1780년 1월 천진암에서는 권철신을 중심으로 하는 강학회가 열렸고 여기에서 정약전, 이벽 등 당시의 저명한 학자들은 천주학을 접하게 된다. 서울 명례방에 살던 통역관 김범우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에 입교하고 자기 집에서 교회 예절 거행과 교리 강좌를 열게 된다. 바로 그때의 명례방이 있던 자리에 오늘날 한국천주교회의 산 역사인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자리하게 되었다.

 

ⓒ명동성당 전경 (가톨릭회관, 성당, 역사관, 꼬스트홀, 옛교구청, 수녀원)

 

 

1882년 제7대 교구장이자 명동 초대주임인 블랑 주교는 성당 터를 매입하여, 종현 성당을 설립, 운영하면서 예비 신학생을 양성하는 한편 성당 건립을 추진했다. 우여곡절 끝에 1892년 기공식을 하고, 3대 주임 프와넬 신부에 이르러서야 성당 건물을 마무리 짓는다. 1898년 5월 29일 드디어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역사적인 축성식을 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하 묘역에는 기해, 병인박해 순교자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등 총 9분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다.

 

ⓒ성인 유해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최경환, 김성우 등)

 

지금의 명동대성당은 평화롭기가 그지없지만, 1970∼80년대에는 우리나라 민주화 투쟁의 중심지로 격동의 현대사를 간직한 곳이다. 1968년부터 교구장을 맡았던 김수환 추기경은 6월 항쟁 때 경찰들에 밀려 명동성당으로 피신하는 시위대를 따스하게 맞아주셨다. 추기경은 경찰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며 “수녀들까지 나와서 앞에 설 것이고, 그 앞에는 또 신부들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맨 앞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까지 밟아야 학생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멋진 분이시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이 시성 되도록 기도와 힘을 보태고 있다.

 

ⓒ성당 야경

 

이렇듯 명동대성당은 찾는 이들을 언제라도 넉넉히 품어주며 평화와 사랑의 기운을 나눠주는 곳으로 자리하고 있다.

 

ⓒ기도하는 신자들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74

전화 : 02-774-1784

주변 가볼 만한 곳 : 한옥마을, 남산, 북촌, 인사동, 경복궁

 

 

홍덕희 작가

 

데스크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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