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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 전시 및 주보사진, 언론 연재

[Arte Photo Forum] 나의 바다 -경인종합일보(2025.12.18)

by 하늘 호수 2025. 12. 21.
 
홍덕희 사진작가

 

내 삶이 팍팍해질 때 달려가던 곳은 어김없이 바다였다. 미숙하던 젊은 날, 현실에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하면 도망치듯 강릉행 고속버스를 타곤 하였다. 경포 바닷가에 서서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때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먼 바다의 파도는 성난 듯 세찬 물결을 이루며 밀려온다. 성난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히고, 갯바위에 부딪힌 파도는 포말로 부서지며 하얀 물거품을 이룬다. 밀려오는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처얼썩 소리가 났고, 처얼썩 소리는 답답했던 내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백사장에 서서 달려오는 거친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는 얼굴에 부딪히는 한겨울의 차가운 바람결도 시원하게만 느껴졌다. 한동안 넋 놓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실타래처럼 얽혔던 마음이 한 가닥씩 풀려나가고, 화나고 속상했던 마음도 살포시 가라앉으며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곤 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하였던 기억이 난다.

 

홍덕희 작가의 작품_나의 바다#1

 

바다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계절에 따라 다르고, 날씨에 따라 다르고, 시간에 따라 다르고, 장소에 따라 다르고 또 내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바다는 하늘색을 닮았다. 하늘이 파란 날의 바다는 파란 바다이고, 흐린 날의 바다는 회색 바다다. 하늘이 옥색일 때는 여지없이 바다도 옥색이다. 맑음과 흐림과 폭풍우를 다 받아내는 바다는 어쩜 사랑을 담은 품 넓은 어머니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익히며 성난 파도를 잠재울 수 있는 기법을 배웠다. 사진 한 컷을 담아내는 시간을 길게 주면 아무리 성난 파도일지라도 부드러운 파도로 잠재울 수 있다. 일렁이는 파도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사물도 긴 시간으로 담아낸 사진에는 사물이 명확히 보일 뿐더러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배어든다. 나는 그 고요와 평화를 사랑한다. 이는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며 맛보았던 마음의 고요와 평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마음이 혼란하던 날은 성당에 가서 성체조배를 하곤 하였다. 성체조배실의 고요함 속에 가만히 머물러 있으면 어느새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고 평화로움 속으로 한없이 녹아 들어갔다. 그 고요와 평화는 현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 오래오래 그곳에 머물러 있고 싶었다. 성체조배실을 나와 현실을 마주하면 곧 깨어지는 고요와 평화였지만 그때의 경험은 내 영혼을 성장시키는 양식이 되었고, 먼 훗날 ‘나의 바다’ 사진의 동력이 되었다.

 

홍덕희 작가의 작품_나의 바다#2

 

나는 바다를 담을 때 장노출을 자주 이용한다. 장노출 사진을 담으며 가끔은 인간관계에서나 신앙적으로 깨달음이 얻어질 때가 있다. 내 마음에 폭풍우를 담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의 의견도 선함도 배려도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소란함을 잠시 멈추고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으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들리고 선함과 배려도 보인다. 어쩜 그 순간은 하느님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멈추어 장노출 사진을 담고 있으면 내가 사랑하는 고요와 평화가 ‘나의 바다’에 담겨 들어온다.

나의 사진 속에는 바다의 분명한 형태가 없다. 긴 시간의 노출을 통해 바닷물의 일렁임이나 구름, 안개들을 담아낸다. 시간을 담아낸 사진은 형언하기 어려운 색채로 채워진다. 그 색채는 계절이나 날씨 혹은 시간대나 노출시간에 따라 다르다. 바다를 담은 사진이지만 ‘나의 바다’는 일반적인 바다 풍경과는 다르다. 새로운 색과 새로운 형태의 바다이며 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다는 품 넓은 어머니다. 당면한 모든 것을 받아내고 감싸주고, 끝없이 솟아나는 사랑이 가득한 어머니일 것이다. 그 바다를 사진으로 담아내며. 내가 고요와 평화와 위안을 얻어 고통을 조금씩 털어냈듯이, ‘나의 바다’ 연작을 바라보는 관람자들도 관람 시간만큼은 고요와 평화를 얻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어머니와 같은 바다로부터 위안을 받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나의 작은 기도를 보태본다.

 

홍덕희 작가의 작품_나의 바다#3

 

 

경인종합일보 ( 202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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