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김수환추기경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일찍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시어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기쁨에 들게 하소서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 정호승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 내린 날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추기경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나와
서울역 시계탑 아래에 눈사람 하나 세워놓고
노숙자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하다가
무료급식소에 들러 밥과 국을 퍼주다가
늙은 환경미화원과 같이 눈길을 쓸다가
부지런히 종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껌 파는 할머니의 껌통을 들고 서 있다가
전동차가 들어오는 순간 선로로 뛰어내린
한 젊은 여자를 껴안아주고 있다가
인사동 길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부처님 곁에 앉아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엄마의 시신을 몇 개월이나 안방에 둔
중학생 소년의 두려운 눈물을 닦아주다가
경기도 어느 모텔의 좌변기에 버려진
한 갓난아기를 건져내고 엉엉 울다가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부지런히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
소주를 들이켜고
눈 위에 라면박스를 깔고 웅크린
노숙자들의 잠을 일일이 쓰다듬은 뒤
서울역 청동빛 돔 위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다
비둘기처럼
김수환추기경님께서
2009년 2월 16일 오후 6시 12분에 선종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내셨던 분
가난한 이들의 벗이었고,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곁에 계셨고
고통받는 이들과 늘 함께 하셨던 분
큰 사람이시고 큰 사제이시고 살아계신 성자셨습니다.
"항상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사랑 받아 행복합니다."
란 말씀을 선종하시기 전날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평소에 당신을 찾는 분들에게
"사랑하고 용서하라."
는 당부의 말씀을 남기시고...
늘 넉넉한 미소와 따듯한 사랑을 담으신 그 모습을 이제는 뵐 수가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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