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국
-최영철
-아내에게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
다음 생애 딱 한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 그대 꼬드겨
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
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
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
쌍심지 켜고 바가지 긁었음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의 그대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아이 둘 온 기력을 뺏어 달아난
쭈글쭈글한 배를 안고
그래도 그래도
골목 저편 오는 식솔들을 기다리며
더운 쑥국을 끓였으면 합니다
끓는 물 넘쳐 흘러
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
쑥국이었으면 합니다.
***
최영철 시인의 9번째 시집 '찔러본다'(문학과 지성사)에는
세상사를 남의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시를 쓴 시 72편이 실려 있다.
먼저 그는 아내의 자리에 서 본다.
아내의 아내가 되어 보고 싶다는 고백은 "사랑한다"는 말의 최영철식 표현이다.
그 고백은 이윽고 자신의 몸을 아내의 입에 들어갈 쑥국으로 만든다.
그의 역지사지 시학은 이처럼 입에 들어가는 먹을 것의 이미지로 표현되곤 한다.
- 조선일보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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