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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우리집안 신앙이야기

서울대교구 근.현대 신앙의 증인 - 송경섭(宋京燮, 루카, 1916~1950?)

by 하늘 호수 2011. 10. 2.

송경섭

서울대교구 근.현대 신앙의 증인 (4)(서울주보  2011. 10. 2.)

 

 

송경섭(宋京燮, 루카, 1916~1950?)

 

송경섭은 1916년 8월 29일에 목포 (혹 제주도)에서

아버지 송창만(바오로)과 어머니 김순(헬레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가족들과 함께 상경하였고,

1936년에 최복주(엘리사벳)와 결혼하여 슬하에 7남매(5녀 2남)를 두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아버지가 설립한 만념 미싱상회(현 을지로 입구에 위치)에서 아버지의 사업을 도왔다.
송경섭이 신앙의 길로 들어선 것은 열두 살 때로,

1928년 8월 14일 가족들과 함께 목포 산정동 본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신부가 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장남이었기 때문에 포기하고 집안일을 맡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그의 신앙심은 매우 깊었다.

 


송경섭의 이러한 마음을 알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어린딸들에게 신부로 봉헌할 남동생을 보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송경섭은 후에 막내아들을 얻었고, 그 막내아들이 신부가 되었다.

이처럼 신앙심이 충만했던 송경섭은 매일 저녁 가족들을 모아 저녁 기도와 묵주 기도를 바쳤으며,

명동 본당 청년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본당과 교회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그런 가운데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송경섭은 서울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 8월 말경 큰딸을 제외한 가족들을 데리고 대전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두명의 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고, 얼마 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있었다.

 


당시 송경섭은 몇몇 청년 교우들과 함께 만념 미싱상회에서 생활하였다.

그러던 중 9월 16일에 서울 다동 집에 있던 세 딸들이 아버지를 따라 상회에 가서 자고자 했다.

네 부녀와 청년들이 상회에 같이 있던 그날 밤 11시(혹 12시)경

내무서원들이 상회에 들이닥쳐 “조사할 것이 있다”며 송경섭을 끌고 갔으며,

이후 송경섭의 행방은 가족들의 수소문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다.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준비위원회(역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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