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에 대한 성찰
지난 달 우리는 예루살렘 공동체 신자였던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부부가
탐욕 속에서 거짓말하였음을 보았다.
이쯤에서 탐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보자.
성경은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이요 파멸의 진원지로 규정하고 있다. (야고 1,14-15)
이 점은 우리가 짓는 모든 죄들이 다 탐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음하지 말라는 6계명을 어기는 것은 남의 여자를 탐하기 때문이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7계명을 어기는 것은 남의 재물을 탐하기 때문이다.
하니니아스와 사피라 부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바르나바에게 질투심을 느꼈던 것은
사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송받고자 하는 명성을 탐했기 때문이고,
거짓말을 했던 것은 재물을 움켜쥐고자 하는 탐욕에서 그러했던 것이다.
우리가 탐욕을 버리지 못하면 못하는 만큼 우리는 구차한 목숨의 노예가 될 것이다.
짧고 귀한 생을 무질서한 욕망으로 다 탕신할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부자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영혼이 우리 몸을 떠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다음의 예화처럼 말이다.
항해를 하던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을 당하고 무인도에 간신히 정착하였다.
그래도 다행히 6개월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섬을 수색한 결과 그 섬에 사금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사실을 알고 흥분한 사람들은 지나가는 배에 구조를 청하기보다는 사금을 캐는 데 정신이 팔렸다.
언제 배가 섬 주위를 지나갈지 모르지만, 우선 금을 캐고 싶었다.
일 년이 지난 후,
지나가던 배가 우연이 이 섬에 들렀다가 많은 해골을 발견하였는데,
이상한 것은 해골들 옆에 반드시 사금이 함께 놓여 있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사금을 캐어 부자가 되는 데 성공했지만 지나가는 배로부터 구조를 받는 데는 실패했던 것이다.
재물에 대한 탐욕은 한계가 없다.
"많이, 더 많이, 조금만 더 많이."
이것은 탐욕을 가진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다.
엄청난 갑부 록펠러가 질문을 받았다. 도대체 어느 정도 벌면 충분하냐고.
그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일 달러만 더 벌면 충분하지요."
그런데 일 달러만 더 갖겠다고 눈에 불을 켤 때 만족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의 고대철학자인 에피쿠로스가 한 말을 가슴에 담아보아야 한다.
"이미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적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만족이 없다."
- 예수회 발행, <이냐시오의 벗들>에서, 송봉모 신부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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