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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필사하며/- 코헬렛

코헬렛 1장

by 하늘 호수 2012. 1. 30.

 

             

 

  

 코헬렛 1장

 

 

 

  

표제

1.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

 

주제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머리말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4.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5.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어 간다.

6.

남쪽으로 불다 북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7.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8.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9.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10.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11.

아무도 옛날 일은 기억하지 않듯

장차 일어날 일도 마찬가지.

그 일도 기억하지 않으리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매한가지다.

 

임금의 고백

12.

나 코헬렛은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임금이었다.

13.

나는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지혜로 살펴 깨치려고

내 마음을 쏟았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괴로운 작업이다.

14.

나는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는데

보라,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15.

구부러진 것은 똑바로 될 수 없고

없는 것은 헤아려질 수 없다.

 

16.

나는 속으로 말하였다.

'보라, 나는 내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던

모든 분들보다 지혜를 크게 하고 더하였으며

내 마음은 수많은 지혜와 지식을 익혔다.'

17.

나는 지혜와 지식, 우둔과 우매를 깨치려고

내 마음을 쏟았다.

그러나 이 또한 바람을 붙잡는 일임을 깨달았다.

18.

지혜가 많으면 걱정도 많고

지식을 늘리면 근심도 늘기 때문이다.

 

 

 

 

 

 

 

 

코헬렛(전도서)는 어떤 성서인가요?

 

히브리어 성서는 이 책이 코헬렛의 말이라 하여 ‘코헬렛’이라 불렀어요.

이 말의 뜻은 확실치 않으나 대개 ‘회중 또는 회중 앞에서 말하거나 가르치는 이’를 가리킨다고 보아요.

그래서 그리스어 성서도 책의 이름을 회중이란 뜻의 “에클레시아스테스(ecclesiastes)”라고 붙였어요.

이 이름이 널리 퍼졌지요.  우리말 성서 이름 “전도서”는 중국어 성서 이름 “傳道書”에서 유래하였어요.

오랫동안 코헬렛을 ‘전도자’로 옮겼던 교회전통에 따른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날은 코헬렛을 전도자보다 “설교자”(공동번역 성서), “교사”(NRSV), 또는 “코헬렛”(NAB)으로 옮기면서,

책이름도 그냥 “코헬렛”(구약성서 새 번역)으로 쓰기도 해요.

 

누가 썼나요?

전도서의 첫머리에는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설교자의 말”(1,1)이라 하여 솔로몬을 저자로 암시하고 있어요.

하지만 글의 성격이나 내용, 사용된 어휘 등을 잘 검토한 결과,

이 성서를 쓴 이는 포로기 이후 그리스 시대에 활동했던 유다의 한 늙은 현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해요.

그러나 그는 이 책을 이스라엘 지혜의 대표격인 솔로몬의 권위 아래에 둠으로써,

전도서가 어느 한 무명작가의 개인적인 지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혜전승에 근거를 둔 권위있는 가르침임을 드러냈답니다.

 

언제 쓰여졌나요?

전도서는 포로기 이후에 나온 후기 히브리어로 쓰여졌어요.

사용된 어휘는 페르시아의 아람어와 그리스어의 영향을 짙게 받았구요.

또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쓰여진 전도서의 필사본 단편이 쿰란 동굴에서 발견되었고

기원전 2세기 말에 살았던 집회서 저자가 전도서를 알았던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 당시에는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크게 보아 전도서는 기원전 3세기경에, 아마도 기원전 250년 전후에 완성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어요.

 

왜 썼나요?

잠언을 읽고 뒤이어 전도서를 읽은 분들은 좀 헷갈리지 않으셔요?

전도서가 잠언의 지당했던 내용들을 상당히 비판하고 있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코헬렛은 헬레니즘 같은 외래사조가 밀려오는 새로운 시대에서 기존의 지혜문학이 지닌 헛점을 보완하고,

이스라엘의 신앙을 바로 세우려고 애를 썼어요.

그가 자주 쓰는 말은 “나는 보았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는 틀이지요.

 즉 코헬렛은 실제적인 경험과 냉정한 관찰을 통해 잠언류에 나타나는 전통적인 지혜의 한계와 단순한 인과응보 논리의 허구성,

 세상의 불공평과 왜곡된 현실 등을 지적하고 있어요.

특히 인간의 종말인 죽음에 부딪쳐 좌절해 있는 인간의 갖가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모든 업적과 소유가 궁극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 상대적인 것임을 알려 주지요.

그리하여 코헬렛은 창조주 하느님만이 절대가치를 지니시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시니,

그분을 경외하면서 그분이 주시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분의 선물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기쁘게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결국 인간의 한계에 몸부림치면서도 신앙에 매달린 코헬렛에게 궁극적으로 빛과 구원을 던져주시는 이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 가톨릭인터넷 Goodnews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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