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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필사하며/- 집회서

머리글

by 하늘 호수 2012. 3. 5.

 

  

 

 

 머리글

 

 

 

 

머리글

 

(1) 율법과 예언서와 그 뒤를 이은 다른 글들을 통하여 위대한 가르침들이

우리에게 많이 전해졌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을 그 교훈과 지혜와 관련하여

칭송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스스로 그것들을 이해할

뿐 만 아니라, (5) 배우기를 즐기며, 말과 글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

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할아버지 예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와 다른 선조

들의 글을 읽는 일에 오랫동안 전념하셨습니다. (10) 그리고 이에 관한 충분한

소양을 갖추시고, 교훈과 지혜에 대한 글을 몸소 쓰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것

은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들과 이 글에 친숙해진 사람들이 율법에 따른 생활을

하여 더욱 진보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5) 그러므로 여러분은 호의를 가지고 이 글을 주의 깊에 읽어 주시기를 바

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성껏 번역하였지만, (20) 어떤 표현들을 제대로 옮길

수 없었다고 여겨지니 이를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 말 표현들을 다른

말로는 똑같이 옮길 수 없습니다. 이 글들뿐 아니라 율법서조차도 그리고 예언

서와 (25) 나머지 글들도 원문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습니다.

 

  에우에르게테르 임금 통치 삼십팔년에 저는 이집트에 가 얼마 동안 머물면서,

적지 않은 교훈이 담긴 이 책의 사본을 발견하고, (30) 정성껏 열심히 이 글을

반드시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이 책을 완성하여

내놓기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온갖 지식을 다 기울였습니다. 저는 이국땅에

살면서 배우기를 즐기고, (35) 율법에 맞는 생활 습관을 익히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 책을 펴냅니다.

 

 

 * 집회서는 본디 히브리 말로 쓰였는데, 치글러의 그리스 말 본문에는 이

히브리 말 수사본을 바탕으로 첨부한 내용들이 있다. 이를 기울어진 글씨체로

적는다.

 

* 머리글- 히브리 말 본문에는 없는 이 머리글은 엄격한 의미에서 집회서의

일부로 간주되지 않는다. 머리글은 산문으로 되어 있는 데다 절 구분이 명확

하지 않아 치글러 판을 따라 5절 단위로 묶어 절수를 표기하였다.

 

 

 

 

 

집회서는 어떤 책인가요?

 

집회서란 성서 이름은?

집회서는 제2경전 중에서 지혜서 다음으로 나오는 성서입니다. 집회는 모임이라는 뜻이죠.

‘집회서’는 초대교회에서 세례를 준비하는 예비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용한 책이라서, 교회의 책이란 뜻으로 이 이름을 붙이게 되었던 거죠.

그전에는 저자의 이름을 붙여서 “벤 시라의 잠언” 혹은 “시라”라고도 불리웠답니다.

 

누가 썼나요?

집회서 말미에 “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51,30)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어요.

이처럼 저자가 자기 책에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구약성서에서 예언서를 제외하고는 유일하다고 할 수 있어요.

아마도 자기 저서에 자기 자신의 소개를 담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여요.

집회서에 소개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벤 시라(=시라의 아들)는 젊은 시절부터 율법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오래도록 명상하고 외국여행도 하면서 쌓은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자 학교를 열었던 예루살렘의 명문 율사로 여겨져요.

원래 히브리어로 쓰인 이 책은 저자의 손자에 의해서 그리스어로 번역되어서 널리 읽혀지게 되었답니다(머리말).

 

언제 썼나요?

기원전 180년경에 쓰여졌을 것으로 보여요.

 저자의 손자가 “유에르게테스 왕 삼십팔 년에 이집트에 가서 그곳에 머무를 때에

고상한 교훈이 담긴 책을 한 권”(머리말) 번역했다는 기록에 비추어, 비교적 정확하게 집필연대를 추정할 수 있어요.

유에르게테스는 프톨레매오 7세(기원전 170-116)를 가리키므로, 유에르게테스 왕 삼십팔 년은 기원전 132년이죠.

 따라서 번역자와 할아버지 벤 시라의 나이 차이를 감안하면, 이 책이 50년 전에 쓰여졌으리라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해요.

또한 벤 시라는 대사제 시몬을 높이 찬양할 뿐 아니라(50,1-24), 시몬의 아들 오니아 3세가 페위된 이후(기원전 174년)에 벌어진 비극적인 상황과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기원전 175-164) 치하의 극심한 박해에 대한 어떤 암시도 찾아볼 수 없거든요.

 

왜 썼나요?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와 시리아의 셀류코스 왕조에 의해서 더욱 널리 퍼진 헬레니즘 문화권 안에 살면서,

전통신앙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회의하는 유다인들을 붙들어 주고자 했어요.

율법을 통하여 계시된 참 지혜를 지니고 있으므로, 헬레니즘을 무작정 따라가기 보다는,

하느님께서 일러주시는 올바른 지혜의 길을 추구하라고 촉구해요.

워낙 방대한 내용이라 인생의 문제들중 다루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에요.

하지만 모든 주제에 앞서서 이스라엘 전통 안에서 이미 전해 내려오는 지혜를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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