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157> Q. 아들이 외로워 합니다.
Q. 아들이 외로워 합니다.
제 아들은 이십대 청년입니다. 그런데 군에서 제대하고 난 후 집안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를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와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을 찾지 못해 그렇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세상에 자기처럼 외로운 사람이 또 없을 것이라고 매일 칭얼거립니다. 처음에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서 외롭다고 칭얼대는 고릴라만한 아들을 보면서 이제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제 아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A. 자매님이 짜증낼만합니다. 나이 먹은 아들이 취직도 안 하고 백수생활을 하면서 외롭다고 징징대면 차라리 군대로 다시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도 들겠지요. 사람이 가지는 외로움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건강한 외로움과 병적 외로움입니다.
건강한 외로움이란 영적 고독의 시간을 말합니다. 우리는 내적 힘을 키우고 자신의 인생 앞길을 점검하기 위해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을 우리 교회에서는 기도, 피정, 사막의 영성 등으로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피해 산으로 올라 고독한 시간을 가지셨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것을 건강한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만약 이런 외로움의 시간 없이 늘 사람을 찾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에 삶의 질이 떨어지고 다른 사람 눈치나 보면서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병적 외로움이란 어떤 것일까요? 자기 인생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면서 만성적 불확실성에 시달리면서 사는 것, 인생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하면서 사는 것, '인생이란 무엇인가'하는 식의 답 없는 답을 구하면서 허무함과 무의미함에 빠져 사는 것, 하느님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면서 기운 없고 외로운 삶을 자초하면서 사는 것, 매일매일이 똑같다고 생각하면서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시간을 죽이면서 사는 것, 자신이 인생에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는 변두리 인생이고 어둠의 자식이란 생각을 가지고 심리적 폐인이 돼가는 것 등이 병적 외로움입니다.
이런 외로움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생을 생각할 때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가장 작은 행위일지라도 나중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 인생의 중심에 서는 삶의 자세를 견지해야 병적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병적 외로움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친절과 선행을 베푸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선행을 하면 우선 기분 좋은 느낌이 들고 자기 만족감이 향상되며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란 자긍심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면 자연히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게 되고 자연스럽게 병적 외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선행을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다. 왜냐면 기쁨이란 약이 사람의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고 말합니다.
실제로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을 보면 어떤 보상도 없는데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 봉사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봉사하는 데서 오는 위로와 기쁨이 커서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하는 것은 봉사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봉사가 사람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를 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자기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처럼 병적 외로움 안에서 산다면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십년 후, 이십년 후, 삼십년 후 모습, 그리고 자신이 죽은 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산다면 무능함 때문에 당연히 직장을 못 잡을 것이고, 자칫하면 사회 낙오자로서 죽어도 아무도 알지 못하는 무명의 행려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쓸데없는 응석받이 같은 외로움에서 빠져나올 것입니다. 병적 외로움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주님 말씀을 전하니 아드님더러 매일 묵상하라고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성안으로 되돌아가실 때에 시장하셨다. 마침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다. 그러나 잎사귀밖에는 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 나무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 맺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자 나무가 즉시 말라 버렸다"(마태 21,18-19).
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 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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