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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성모 "Stabat Mater"
이 제명은 '성모는 서 계시다'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가톨릭의 성모통고(聖母痛苦)기념일(9월 15일) 미사에서 그 통고를 묵상하는 기도문이다. 또한 성가로서 사순절(四旬節)과 성모통고의 기념일, 특히 십자가의 길을 행진할 때 불린다 요즘 사순 시기에 맞는 묵상 곡이다.
슬픔은 우리를 더욱 순수하게 만든다.
비발디의 슬픔의 성모 -서정기 : 방송대학보사
불란서 사람에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 것과 독일 사람에게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가 누구냐고 묻는 것은 똑같이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글을 대학 2학년 때 읽은 적이 있다. 별 생각 없이 원고청탁을 받아들이고 나서 글을 쓰려고 하니 내 애청 곡을 무엇으로 꼽아야 할는지 참 난감하기만 했다.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좋은 다른 음악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봄날과 가을날, 홀로 있을 때와 함께 있을 때 등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좋아지는 음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하며 고르고 골라보니 바로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슬픔의 성모'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글자 그대로 번역을 하면 `어머니 또는 성모가 서 있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들이 죽어 가는 것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비통함. 그 비통함에서 느껴지는 슬픔. 우리는 환한 기쁨 속에서보다도 슬픔 속에서 더 맑고 순수해지며 쉽게 슬픔의 계단을 따라 자신의 내부로 침잠해 들어간다. 슬픔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이러저러한 때를 씻어내고 싶어한다. 기쁨이 충만함이라면 슬픔은 결핍이다. 누가 가득 찬 술잔에 술을 부으랴. 빈 잔에 술을 붓듯 우리는 슬픔 속에서 무언가를 갈망한다.
카톨릭 사회인 서양에서 음악가들은 누구나 이 주제에 대해서 곡을 써 보고 싶은 욕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비발디 이외에도 스카를라티나 페르골레지, 로씨니, 드보르작, 풀랑같은 이들도 이곡을 작곡했다. 우선 이 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여기서 어머니는 성모이어도 좋고 우리의 곁에 있는 어머니들이어도 좋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비통함에서 슬픔을 느끼기만 하면 될 일이다. 우리말 중에 참척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아마 스타바트 마테르에서 느껴지는 것이 그러한 것이리라.
비발디의 스테바트 마테르는 여러 성악가들이 불렀는데 느낌이 모두 다르다. 문외한인 내가 감히 말한다면 1976년에 콘트랄토 리비아 부다이가 녹음한 곡은 예수의 수난의 드라마에 맞지 않는다. 너무 씩씩해서 차라리 글로리아를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준다. 카운터테너인 제임스 바우먼은 낭랑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단순하게 곡을 해석했는데 감동적이다. 아카데미 오브 앤션트 뮤직이 비브라토 없이 길게 흐느끼는 것이 오히려 어머니의 비통함을 더욱 짙게 느끼게 한다.
미쉘 코르보즈가 지휘하고 나오코 이하라가 부른 곡은 어머니의 비통함이라던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표현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고통을 겪은 다음의 가라앉은 마음 상태라고 할까. 세상에서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카운터테너인 제라르 렌느가 부른 스타바트 마테르이다. 앞에서 말한 제임스 바우먼 이외에도 르네 쟈콥이나 안드레아스 숄같은 카운터테너들이 있지만 제라르 렌느 만큼 풍부한 음색으로 비발디를 해석하는 이는 없는 것 같다. 특히 스타바트 마테르는 더욱 그렇다. 여성이 아니면서 남성적이기 보다는 여성적인 음색에 더 가까워서 그런지 그의 곡을 들으면 마음은 안으로 들어가고 눈물은 밖으로 나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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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Stabat Mater는 음악의 가사가 된 종교시를 말한다. 이것은 1306년에 사망한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야코보 다 토디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용은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성모의 고통을 노래한 것이다. 이 시가 점점 많은 이들의 입에 전해지면서 15세기 이후에는 특정한 날의 미사에 사용되기 시작한다. 트렌트 종교회의(1543-63년)에서 이의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1727년 교황 베네딕트 8세가 9월 15일의 성모통고 기념일이나 성금요일의 공식적인 성가로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인기를 말해주듯 많은 작곡가들이 이 시에 곡을 붙였는데 오늘 듣게될 7명의 곡 외에도 죠스깽 데 프레, 라수스,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아빠), 도미니코 스카를라티(셋째 아들), 보논치니, 칼다라, 모짜르트(k.33, 소실됨), 하이든, 드보르작, 리스트, 베르디, 시마노프스키, 구노, 펜데르츠키 등이 음악상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정작 성서에는 십자가 아래 성모의 고통을 묘사하는 장면이 전혀 없다. 마태오, 마르코, 루가의 복음서에서는 "또 여자들도 먼데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갈릴레아에 계실 때에 따라 다니며 예수께 시중들던 여자들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특이하게도 요한의 복음서에서만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라는 정도의 언급이 있을 뿐이다. 이 글 제목에 있는 말은 예수를 성전에 봉헌할 때 현자가 한 예언이다.
비록 이 시가 성모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주제 자체가 성모에 대한 신심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성모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예수의 희생과 구원을 믿는다는 것을 주제로 한다. 고통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이다. '신성'을 강조해야 하는 종교에서 이렇게 고통으로 '인성'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성을 강조하는 종교의 교리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돕고 현실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인간적인" 이 시가 필요했을 것이다. 신학 논리의 정서적인 거리감을 인간의 감정에 기대어 좁혀나가는 것이다. 신성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고통이라는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라는 면에서 이 시의 매력이 있는 것이고, 수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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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bat Mater dolorosa
성모애가
어머니께서 서 계셨네
어머니는 아들이 매달려 있는 십자가를 붙잡고 비통해하며 서 있네 위로되지 않는, 기진하고 신음하는 영혼에 칼이 깊이 박히네 얼마나 그 분은 슬프고 비탄 스러운가. 모든 어머니 중에서 가장 복되신 마리아님... 아드님이 무참히 살해당했다고 생각하며 어머니는 숨죽여 눈물을 흘리네 누가 눈물을 멈출 수 있을까, 그런 고난을 겪는 주님의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예수 그리스도 곁에서 슬프게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보며 누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제 나라의 죄인들을 위해 가죽채찍질 당하는 아들을 어머니 보고 있네. 사랑스러운 아들이 체념 속에서 죽어가며 영혼을 아버지에게 맡기는 것을 어머니는 보고 있네 내가 당신과 함께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 사랑의 근원인 어머니여, 당신의 쓰디쓴 고통을 나도 느끼게 하소서 내 가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그의 마음에 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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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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