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3년 새해 첫날입니다. 아이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주님, 제게 힘을 주시어 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수 있게 하소서.”
지난 9월 별세한 작가 최인호(1945∼2013)의 책 더미 사이에서 발견된 원고지 200장 분량의 유고가 ‘눈물’(여백출판사)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였다. 2005년 설암(舌癌) 진단을 받고 스스로 ‘고통의 축제’라고 명명했던 기나긴 투병의 시간. 그때 자신의 방에 덩그러니 놓인 탁상 위에 눈물을 흘렸던 최인호는 유고에 이렇게 썼다.
“오늘 자세히 탁상을 들여다보니 최근에 흘린 두 방울의 눈물 자국이 마치 애기 발자국처럼 나란히 찍혀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가장자리가 별처럼 빛이 난다는 겁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알코올 솜을 가져다 눈물 자국을 닦았습니다. 눈물로 탁상의 옻칠을 지울 만큼 저의 기도가 절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탐스러운 포도송이 모양으로 흘러내린 탁상 겉면의 눈물 자국도 제게는 너무나 과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알코올 솜으로 닦으면 영영 눈물 자국이 없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알코올이 증발해 버리자 이내 눈물 자국이 다시 그대로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최인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가 아닌 작가로서 숨쉬고자 했다. 육신의 아픔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그렇게 결심한 그의 열정을 파괴할 수 없었다. 깊은 밤, 탁상 앞에 앉아서 그는 자신의 고통과 마주한 채 한 자 한 자 원고지를 채워 나갔다. 깊은 밤 홀로 깨어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를, 어쩌면 자신이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는 원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주님의 발을 제 눈물로 적시고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드릴 수 있다면….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내 눈에서도 홍수와 같은 눈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주여 나를 게파(바위)로 만들어 주소서. 성모님과 십자고상이 있는 탁상 앞에 앉아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흐릅니다. 주님 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주님 저는 이 순간만은 진실합니다.”
투병 생활 가운데 어느 날, 그는 이미 출간된 자신의 책들을 다시 읽으며 깊은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병에 걸리지 않았을 때 쓴 책들이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저는 주님에게만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진실로 인정받고 칭찬받고 잊히지 않고 싶은 분은 오직 단 한 사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그러하오니 주님. 만년필을 잡은 제 손 위에 거짓이 없게 하소서. 제 손에 성령의 입김을 부디 내리소서.”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 이렇게 적었다. “2013년 9월 15일 최인호 베드로는 다시 입원했습니다. 그리고 9월 23일 정진석 추기경님께서는 마지막 병자 성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최 베드로는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9월 23일 오후 딸 다혜가 물었습니다. ‘아빠 주님 오셨어?’ ‘…아니…’ 그 다음 날 다시 다혜가 물었습니다. ‘아빠, 주님 오셨어?’ ‘…아니…’ 다음 날, 9월 25일 같은 시간에 다혜가 물었습니다. ‘아빠, 주님 오셨어?’ ‘주님이 오셨다. 이제 됐다.’” 2013년 9월 25일 오후 7시2분, 최인호는 주님을 영접한 채 선종했다. 유고는 부인 황정숙씨가 고인의 서재를 정리하던 중 발견했고 평소 친동생처럼 아끼던 여백출판사 김성봉 대표에게 전달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감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 ‘깊은 고독’ 속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 고독이 ‘하느님께서 과연 계신 것일까 하는 악마적 의심’마저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고독과 의심의 두려움은 제게 있어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
- 최인호 유고집 ‘눈물’ 중에서 -
오늘 자세히 탁상을 들여다보니 최근에 흘린 두 방울의 눈물 자국이 마치 애기 발자국처럼 나란히 찍혀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가장자리가 별처럼 빛이 난다는 겁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알코올 솜을 가져다 눈물 자국을 닦았습니다. 눈물로 탁상의 옻칠을 지울 만큼 저의 기도가 절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탐스러운 포도송이 모양으로 흘러내린 탁상 겉면의 눈물 자국도 제게는 너무나 과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알코올 솜으로 닦으면 영영 눈물 자국이 없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알코올이 증발해 버리자 이내 눈물 자국이 다시 그대로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08년 암 진단을 받은 작가 최인호는 세상과 단절한 채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환자가 아닌 작가로서 죽고자 했다. 육신의 아픔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이러한 그의 열정을 파괴할 수 없었다. 깊은 밤, 탁상 앞에 앉아서 그는 자신의 고통과 마주한 채 한 자 한 자 원고지를 채워 나갔다. 고독과 눈물, 그리고 사랑의 언어로.
“2013년 9월 15일 최인호 베드로는 다시 입원했습니다. 그리고 9월 23일 정진석 추기경님께서는 마지막 병자성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최 베드로는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9월 23일 오후 딸 다혜가 물었습니다. “아빠 주님 오셨어?” “…아니…” 그 다음 날 다시 다혜가 물었습니다. “아빠, 주님 오셨어?” “…아니…” 다음 날, 9월 25일 같은 시간에 다혜가 물었습니다. “아빠, 주님 오셨어?” “주님이 오셨다. 이제 됐다.” 그리고 2013년 9월 25일 저녁 7시 02분, 작가 최인호는 선종하였습니다. 최 베드로가 주인공이었던 1인극 ‘고통의 축제’는 이로서 막을 내렸습니다.”
작가는 기나긴 ‘고통의 축제’를 마치고 홀연히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문학을 넘어 우리나라 문화계 전체의 지형도를 바꾼 우리시대의 거인, 최인호. 그 불꽃같은 혼의 흔적이 포도송이 같은 하얀 눈물 자국으로 남았다. 그가 떠나간 작업실, 덩그러니 놓인 빈 탁상 위에 배어 있는 하얀 눈물 자국… 그리고 쌓여진 책 더미 사이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그의 육필 원고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작가는 깊은 밤 홀로 깨어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르는,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는 원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벗이여’로 시작되는 인간 최인호의 고백인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자백, 『눈물』이다.
“오늘은 2013년 새해 첫날입니다. 아이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주님, 제게 힘을 주시어 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수 있게 하소서. 주님은 5년 동안 저를 이곳까지 데리고 오셨습니다. 오묘하게. 그러니 저를 죽음의 독침 손에 허락하시진 않으실 것입니다. 제게 글을 더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시어 몇 년 뒤에 제가 수십 배, 수백 배로 이자를 붙여 갚아 주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눈물』은 작가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의 최인호, 그의 영적 고백이다. 병마의 고통 속에서 작가는 새로운 눈으로 삶과 죽음을, 인간의 아름다움과 곡진한 슬픔을, 그리고 그 가운데서 드러나는 신의 기적을 바라본다. 죽음과 마주한 고독한 영혼의 울림―『눈물』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최인호의 깊고 내밀한 목소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절대고독의 단독자가 된다. 어찌 외롭지 않았으랴. 어찌 두렵지 않았으랴. 그러나 작가 최인호는 자신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애써 포장하려 들거나 그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정직하게 절망했고, 정직하게 다시, 일어섰다. “감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 ‘깊은 고독’ 속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 고독이 ‘하느님께서 과연 계신 것일까 하는 악마적 의심’마저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고독과 의심의 두려움은 제게 있어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
- 최인호 유고집 ‘눈물’ 중에서 -
스스로 ‘고통의 축제’라고 명명한 5년이라는 기나긴 투병의 시간을 지나, 최인호(1945~2013)는 지난 9월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주님, 제게 힘을 주시어 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수 있게 하소서. 주님은 5년 동안 저를 이곳까지 데리고 오셨습니다. 오묘하게. 그러니 저를 죽음의 독침 손에 허락하시진 않으실 것입니다. 제게 글을 더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시어 몇 년 뒤에 제가 수십 배, 수백 배로 이자를 붙여 갚아 주기를 바라실 것입니다.”(216쪽)
고통의 기간이었다. 묵상하며 고통과 마주하던 방의 탁상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감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 ‘깊은 고독’ 속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 고독이 ‘하느님께서 과연 계신 것일까 하는 악마적 의심’마저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고독과 의심의 두려움은 제게 있어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235~237쪽)
하지만 최인호는 자신의 외로움과 두려움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눈물 자국이 선명한 탁상 앞에 앉아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르는,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는 원고를 썼다.
“2008년 여름, 나는 암을 선고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앓고, 가톨릭 신자로서 절망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기도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희망을 갖는 혹독한 할례 의식을 치렀습니다. 나는 이 의식을 ‘고통의 축제’라고 이름 지었습니다.”(29쪽)
최인호가 ‘별들의 고향’으로 떠나기 전 ‘고통’을 ‘축제’로 완성하기 위해 썼던 미공개 원고가 공개됐다. 부인 황정숙 여사가 최인호 방의 책 더미 사이에서 발견한 200장 분량의 원고를 엮은, ‘사랑하는 벗이여’로 시작하는 유고집 ‘눈물’이다.
“이 생명의 저녁에 나는 ‘빈 손’으로 당신 앞에 나아가겠나이다.”(251쪽)
‘별들의 고향’ ‘겨울 나그네’ 등으로 소설 붐을 이끈 문단의 큰별 최인호의 내밀한 고백이다. 혹은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신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베드로의 고백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벗이여.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억지로, 강제로 내 생명을 연장시키려 노력하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2013년 1월1일 잠들려 하기 전”(263쪽)
최인호가 이해인 수녀에게 부친 편지들을 비롯해 형제처럼 지낸 영화배우 안성기의 추도사, 죽마고우 이장호의 작별인사 등 최인호를 붙잡는 글들도 함께 실렸다. 최인호는 2008년 침샘암 발병 후 5년 간 투병하다가 9월25일 숨을 거뒀다.
“괴테의 시 문구/ ‘산봉우리마다 휴식이 있으리라’처럼/ 나는 조용한 휴식에 묻힐지언정/ 결코 나는 잠을 자지 않노라.”(1961년 서울고 1년 시절 쓴 시 ‘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