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아저씨 이야기
초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뒤 나는 농사꾼으로 남길 바라는 아버지께 혼자 일하면서 공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무일푼으로 이곳저곳 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그때 작고 허름한 인쇄소 앞에서 만난 김씨 아저씨가 내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 인쇄소에서 일하거라. 나중에 돈이 모아지면 야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 주마"하고 하셨다.
그날부터 나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찬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면서 아저씨의 인쇄소에서 일했다. 한 달이 지나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라면 한 상자를 사다놓고 나머지는 몽땅 저금했다.
신이 나서 일하는 동안 또 한 달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라면상자에 손을 넣어보니 라면이 두 개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 한 개를 꺼냈는데 다음날 신기하게도 라면 두 개가 그대로 있었다. "분명히 어제 하나를 끓여 먹었는데..." 생각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또 하나를 꺼냈다. 그러나 다음날도 여전히 라면은 두 개였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라면 한 상자를 한 달이 넘게 먹은 것이다.
다음날 나는 일부러 하루 종일 라면 상자가 있는 쪽에서 일했다. 퇴근 무렵 김씨 아저씨가 나를 불러 가게에 갔다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시기에 인쇄소 밖에 나와 유리창 너머로 슬쩍 라면 상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아저씨가 라면 상자 쪽으로 걸어가더니 품속에서 라면 한 개를 꺼내 상자 속에 집어넣고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걸어나오셨다.
어린 사남매와 병든 아내와 함께 월세 단칸방에 살고 계시다는 김씨 아저씨...... 나는 그날 아저씨의 심부름도 잊은 채 인쇄소 옆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좋은 생각> 중에서
차동엽신부님의 주일복음묵상에서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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