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 글/- 묵상 글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

by 하늘 호수 2008. 11. 29.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

 

나는 교회법 1008조를 칠판에 쓰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법 1008조에 따르면 성직자란 첫째, 신품성사로 불멸의 인호를 받은 분들입니다. 곧 존재와 신원이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둘째, 이분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대리하는 삼중직무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하는 기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곧 사제직, 왕직, 예언직 기능을 수행하는 분들입니다. 전자는 존재론적 변화요, 후자는 기능적 변화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직자들을 보고 때로는 존경을 보내고, 때로는 실망하는 것은 두번째 측면에 대해서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하신 따듯하고 검소하고 희생적이며 사랑 가득한 사제, 기도 많이 하고 강론 잘하고 생각이 깊고 공평한 사제를 원하는 것은 기능적 측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대로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존재가 행위보다 먼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을 잘 한다하고 성직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가 되었기에 그 일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자녀를 돌보고 살림을 잘하는 것으로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사실 때문에 자녀를 돌보고 살림을 하는 것이지요. 만일 이것이 거꾸로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 잘하는 파출부가 어머니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기능이 우선 된다면 우리가 병들거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는 우리의 자리를 누군가 대신해도 좋다는 말이 됩니다.

 

성직자도 그 자체로서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자신의 기능과 직무에 결함을 보이고 그리스도의 인격을 보여주지 못한다 해도 존재 자체로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제정'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제정' 곧 하느님의 선택에 가톨릭 신자라면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물론 성직자한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도 하느님이 선택한 자녀라는 신분으로 이미 존재론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잘나고 특출나서 뽑힌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는 성직자나 평신도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이 말은 모두 저희 학교 교회법 교수 신부님께서 강의하신 내용을 그대로 전달해 드린 것입니다. 그분은 누구보다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성직자들이기에 성모님의 마음으로, 사제를 기른다는 심정으로 돌봐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밤새워 기도하고 뽑으신 분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예수님과 같이 기도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훌륭한 성직자 뒤에는 훌륭한 평신도가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성직자니까 맹목적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밤을 새워 뽑으신 그분들을 위하여 우리도 함께 기도하고, 성모님의 마음으로 돌봐드려야 합니다."

 

- 이인옥 지음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중에서 -

 

 

 

반응형

'묵상 글 > - 묵상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의 기도 - 이해인  (0) 2008.12.07
십자가  (0) 2008.11.29
병상의 김수환 추기경   (0) 2008.11.27
엎질러진 물  (0) 2008.11.21
무조건 용서해 주시는 아버지  (0) 2008.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