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한가운데서 만나는 분
- 아베라르도 디니 신부
세상은 하느님을 가리고
그리스도를 미워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하느님의 모습인 인간이 사는 곳입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어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카 2, 6-7 )
주님, 당신은
우리처럼 되기 위하여
우리와 하나가 되려고
우리 안에 거처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당신은 여러 세월을
침묵 중에 보내시며
닳도록 열심히 노동하셨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그러하듯
뙤약볕 흙먼지 길을
끊임없이 누비며 다니셨고
인간의 모든 괴로움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당신은
가난한 자, 비천한 자, 무시당한 자,
모든 이에게 버림받은 자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당신은
교활한 사람들의 간계를 폭로시키고
당신께 머물면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대답해 주셨고
당신께 무관심하던 사람들을
잠에서 일깨워 주셨습니다.
당신은
오래 전부터 당신을 기다리던
사람들을 만나 주시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 주려고 오셨습니다.
사람들의 피곤한 발자국이
남아 있는 거리가
당신의 집이었고
소리지르는 장사꾼,
빈둥거리는 실직자들,
남자를 유혹하는 매춘부들,
뛰어 노는 어린이들,
양지 쪽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인들이 모인 광장이
바로 당신의 집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드나들던 성전이
당신의 집이었고
고기는 안 잡히고
가끔 풍랑을 만나 시달리는 호수가
당신의 집이었습니다.
창공과 노천에
당신의 집이 있었고
옛 사람들이 살던 그때 그곳에
당신이 계셨고
오늘을 사는 한 인간이 있는 곳에
당신이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루카 10, 30-35)
사막길에 쓰러져
반쯤 죽어 있는 한 사람과
그를 안아다가 치료해 준 다른 한 사람
이 두 사람 사이의 사건은
인간 각자가 당하는
우연한 일들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수십 세기 전부터
인간의 드라마는 시작되었습니다.
죄악의 늪 속에 허우적거리는
한 인간의 드라마
모든 이가 충분히 먹고 싶은 빵
더 원하는 자에게는 항상 부족한
그 빵의 이야기
사람들이 이루어 놓았으나
어느새 사라져 버리는
평화의 역사
사랑의 고통이
모두 지나간 다음의
고독에 대한 이야기들이 계속되었습니다.
버림을 받은 아가씨와
배신당한 청년의 사랑 이야기
결혼한 날 신랑을 잃어버린
어느 신부의 이야기
해고당한 노동자의 딱한 사정 이야기
자식들과 이웃에게서
버림받은 노인의 이야기
무고한 피고인의 억울한 사연
이런 일들의 주인공이
바로 인간이요 내 형제입니다.
꿈과 희망이 깨어져 버린 인간
비탄과 눈물에 젖어
비웃음을 당하고
허공을 헤매다 지쳐 버린 인간입니다.
과거의 일로 상처받고
현재에 버려진 인간
당신을 얻게 될 내일을
잃어버린 인간입니다.
오 주님,
내가 정말 세상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면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뛰어나가야겠습니다.
주님, 도와 주십시오.
이 기도가
입으로만 반복되는
형식적인 기도가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는
그 사막길처럼 위험한
오늘의 사회 환경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사랑을 실천에 옮기게 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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