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짓으로 말해요, 맑고 향기롭게
퇴근 길 내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빨랐다.
"큰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져 입원하셨다는구나."
전화기 속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는 나를 서둘러 병원으로 향하게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서울시내 한 병원에 도착해 병실 호수를 물으려는 찰나
아뿔싸! 1층 화장실 선반에 올려둔 휴대전화가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바쁜 마음으로 서둘러 화장실과 병원 복도 구석구석을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내 휴대전화는 없었다.
동행한 동생의 휴대전화를 빌려 전화를 걸어보니
신호가 울리다가는 이내 끊어지기를 여러 번,
'최신형 휴대폰이 탐나서 일부러 안 받는건 아닐까'하는
미운 생각이 고개를 들 즈음, 동생의 전화로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1층 접수하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전화는 안 받고 이런 메시지는 또 뭐람.' 투덜대며
진료 접수처 앞에 도착했을 때 아주머니 한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낚아채듯 전화기를 받아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순간,
아주머니께서는 본인이 농아인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었노라고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표현하고 계셨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나의 실수는 까맣게 잊고
잠시나마 모난 생각을 가졌던 내 자신에게
입모양만으로 '괜찮아요'를 연발하시는 아주머니.
무사히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주머니께서 전하는 순정하고 향기로운 손길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문 날이었다.
- 바울 나눔터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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