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분간만 보여 드립니다, 1000년 만에 문 연 수도원 [중앙일보]
다큐‘위대한 침묵’제작한 그뢰닝 감독 미사 묵상 식사 산책의 일상 … 내일부터 2주 동안 서울서 상영
미리 경고를 받긴 했지만 설마 했다. 162분 내내 정말 대사가 거의 없다. 알프스 산맥 해발 1300m에 위치한 카르투시오 수도회 산하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 묵언수행에 몰두하는 이 곳 수도사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에는 실로 완벽에 가까운 침묵이 흐른다. 마루바닥 삐걱대는 소리, 옷자락 서걱대는 소리, 바람 휘날리는 소리, 눈송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 관객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침묵하는 이들을 따라 162분 동안 자연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든가, 아니면 긴 하품을 하며 꾸벅꾸벅 졸다 자리를 뜨거나. 관람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면서 발견인, 흔치 않은 영화다.
2005년 선보인 ‘위대한 침묵’은 베니스영화제·토론토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았고,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월드다큐멘터리 부문)을 받았다. “삶의 느린 리듬에 관한 시적인 에세이”(버라이어티), “이미지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고요함, 감동 그 자체”(쥐트도이체 자이퉁) 등의 호평이 쏟아졌다. 독일에서는 처음 1개관으로 개봉했다가 17개관으로 늘어나면서 35주간 상영됐다. 필립 그뢰닝(50·사진) 감독을 30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봉쇄 수도원, 드디어 문을 열다=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은 1688년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진 후 단 한번도 일반인에게 내부를 공개한 적이 없다. 1960년 수도사들을 찍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수도원에 들어갔던 기자들이 찍은 사진이 전부다. 그뢰닝 감독도 84년 촬영 신청을 했다가 단박에 거절당했다. 대학에서 의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던 중 돌연 영화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영화를 찍기보다는 제 스스로를 돌아볼 침묵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간절했어요. 그래서 촬영을 거절당한 뒤 다른 수도원을 찾아가 열흘 간 수행을 했죠. 수도원의 조용한 리듬에 빠져들다 보니 제 내면의 목소리에 절로 귀를 기울이게 됐어요. 아, 이런 삶을 극장에서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면 정말 굉장하겠구나 싶었죠. 수도원과 극장은 어둡고 조용한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그가 카르투시오 수도회를 고집했던 이유는 침묵수행을 가장 엄격히 지키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절당한 후 ‘위대한 침묵’ 프로젝트는 그의 가슴 속에 묻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5년 만인 99년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아직도 영화 찍을 생각이 있느냐”는 전화가 수도원으로부터 걸려왔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믿기지 않아요. 정말 기쁘고 떨렸죠. 내가 과연 잘 만들 수 있을까 한 달 넘게 고민을 거듭하다 수도원을 찾아갔어요. 15년 전 내 느낌이 틀리지 않겠구나 싶은 확신이 들었죠.”
2005년 선보인 ‘위대한 침묵’은 베니스영화제·토론토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았고,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월드다큐멘터리 부문)을 받았다. “삶의 느린 리듬에 관한 시적인 에세이”(버라이어티), “이미지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고요함, 감동 그 자체”(쥐트도이체 자이퉁) 등의 호평이 쏟아졌다. 독일에서는 처음 1개관으로 개봉했다가 17개관으로 늘어나면서 35주간 상영됐다. 필립 그뢰닝(50·사진) 감독을 30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봉쇄 수도원, 드디어 문을 열다=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은 1688년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진 후 단 한번도 일반인에게 내부를 공개한 적이 없다. 1960년 수도사들을 찍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수도원에 들어갔던 기자들이 찍은 사진이 전부다. 그뢰닝 감독도 84년 촬영 신청을 했다가 단박에 거절당했다. 대학에서 의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던 중 돌연 영화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영화를 찍기보다는 제 스스로를 돌아볼 침묵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간절했어요. 그래서 촬영을 거절당한 뒤 다른 수도원을 찾아가 열흘 간 수행을 했죠. 수도원의 조용한 리듬에 빠져들다 보니 제 내면의 목소리에 절로 귀를 기울이게 됐어요. 아, 이런 삶을 극장에서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면 정말 굉장하겠구나 싶었죠. 수도원과 극장은 어둡고 조용한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그가 카르투시오 수도회를 고집했던 이유는 침묵수행을 가장 엄격히 지키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절당한 후 ‘위대한 침묵’ 프로젝트는 그의 가슴 속에 묻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5년 만인 99년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아직도 영화 찍을 생각이 있느냐”는 전화가 수도원으로부터 걸려왔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믿기지 않아요. 정말 기쁘고 떨렸죠. 내가 과연 잘 만들 수 있을까 한 달 넘게 고민을 거듭하다 수도원을 찾아갔어요. 15년 전 내 느낌이 틀리지 않겠구나 싶은 확신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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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조명·사운드 절대 불허”=평소에 방문객을 전혀 받지 않는 수도원이 ‘비공개’ 원칙을 바꾼 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당시 ‘가톨릭 교회는 예술가를 필요로 한다’는 내용의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한 덕이 컸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사진이든 책이든 영화든 매체에 상관없이 우리 삶의 방식을 세상에 알리자는 분위기가 조성된 거죠.”
그렇지만 촬영 조건은 깐깐했다. “인공적인 조명이나 사운드를 쓰지 말 것, 수도원의 삶에 대한 논평이나 해설을 하지 말 것, 스태프 없이 혼자 찍을 것, 영화의 첫 공개는 영화제에서 할 것 등이었죠. 조건이 빡빡하다는 불만이 안 들던데요. 애초 제 기획과 정확히 일치했거든요. 카메라가 무거워 끙끙대긴 했지만 혼자 찍었기 때문에 수도원 생활의 순수함과 강인하고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느끼고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수도원의 사계를 담기 위해 촬영에만 2년이 걸렸다. 순수 촬영기간은 6개월.
기도와 묵상, 미사, 식사와 산책 등으로 되풀이되던 수도사들의 경건한 삶은 영화 막바지, 눈썰매 타는 장면에서 반전을 맞는다. 조용하던 객석에 웃음이 터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이처럼 단순한 행복을 맛보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평소 고된 수행을 하는가를 느끼게 하는 역설적인 장면이죠. 아마 관객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을 겁니다.” ‘위대한 침묵’은 서울 소격동 씨네코드 선재(02-730-3200)에서 3일부터 2주간 상영된다.
기선민 기자
◆카르투시오 수도회=독일 쾰른의 성 브루노(1030∼1101)가 1084년 프랑스 알프스지대의 샤르트뢰즈에 설립했다. ‘하느님과의 합일’을 지향한다. 수도사들은 청빈·정결·순종·침묵을 서원하며 독방생활을 한다. 외부 방문객은 일절 받지 않으며 일주일에 한 번 하는 4시간의 산책 중에만 대화가 허락된다. 가톨릭 수도회 중 가장 엄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경북 상주시)을 포함해 전세계에 19개의 수도원이 있다. ‘위대한 침묵’을 촬영한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은 카르투시오 수도회 산하 수도원 중 가장 역사가 가장 오랜 대표 수도원이다. 왼쪽 그림은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상징.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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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완전한 침묵 속에서만 우리는 듣기 시작한다. 언어가 잦아들 때만이 우리는 보기 시작한다
(Only in complete silence, one starts to hear. only when language resigns, one starts to see).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주님은 바람가운데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난 뒤 지진이 일어났는데 주님은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난뒤에 불이 일어났는데 주님께서는 불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거기에서...................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1열왕 19,11-13)
침묵가운데.... 거기에... 주님이....
"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만 나의 제자가 될 수있다..." .............................
" 주님께서 저를 불러 주시어, 저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 죽음을 왜 두려워합니까? 그것은 모든 인간의 운명입니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하느님을 더욱 빨리 만나려 서두룰수록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을 다시금 발견한다는 것이 아주 큰 즐거움입니다.
과거와 현재, 이런 것들은 인간적인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는 과거가 없습니다. 오직 현재만이 지배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그분은 우리 삶 전체를 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무한히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의 안녕을 영원속에서 보살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제 눈이 안보이도록 해주신데 대해 하느님께 자주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제 영혼의 유익을 위해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음을 확신합니다.
세상이 하느님에 대한 모든 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
그들은 더이상 살아가야 할 아무런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린다면 무슨 이유로 이 지상에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무한히 선하신 분이시고 하느님의 섭리하심은 우리의 최상의 유익을 위해서이다라는
하느님께서 무한히 선하신 분이시고 하느님의 섭리하심은 우리의 최상의 유익을 위해서이다라는
원리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행복해야 하며 절대 불행해 해서는 안됩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우리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무한히 선하시고 우리를 도우신다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만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 영화중...카르투시안 수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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