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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도와 하느님의 뜻이 다를 때는

by 하늘 호수 2010. 3. 12.

 

 

 

 

나의 기도와 하느님의 뜻이 다를 때는

 

 

살다보면 나의 기도와 하느님의 뜻이 맞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욕심을 부린 일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하느님의 뜻에 고개를 숙일 수 있지만,

내 뜻이 올바르고 선하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을 때는 쉽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아주 큰 농원에서 나란히 자라고 있는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어린 묘목답게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

장차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었을 때의 자신들의 계획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첫째 묘목은 큰 저택의 건축 재료로 쓰여 목재로서의 아름다운 무늬를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둘째 묘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람선의 가장 높은 돛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면 어떤 항구에 가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묘묙은 야외극장의 건축 재료로 쓰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야외극장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잘 보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세 그루의 묘목은 다음과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첫째 나무는 성장한 다음 일부분이 잘려서 외양간의 먹이통이 되었고,

둘째 나무는 잘려져서 가난한 어부의 투박한 배가 되어 호숫가에 오래 동안 떠 있었고,

셋째 나무 역시 잘려 나가 십자가로 만들어져서 어떤 사람의 십자가형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세 묘목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욕심이 그리 잘못된 욕심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꿈을 이루어 주시지 않은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묘목들은 자신의 꿈과는 다른 모습으로 빛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첫째 묘목은 마구간의 구유가 되어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그분을 모셨고,

둘째 묘목은 갈릴래아 호숫가의 투박한 배가 되어 예수님께서 그 배에 앉아 사람들을 가르칠 수가 있었고,

셋째 묘목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되어 그분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는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수님께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누워계셨던 그 구유를 보고 싶어 하고,

예수님께서 앉아서 가르치셨던 그 배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매달리셨던 그 십자가를 만져 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그 세 묘묙은 자신들의 꿈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들의 꿈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 하느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의 꿈을 이루어주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내가 꿈꾸었던 나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빛나는 나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가졌으면 합니다.

 

 

- <해나리> 목5동성당 오승원 이냐시오 주임신부님 글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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