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선물
저희 시아버님은 현재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제가 5년 전 결혼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고
사물의 이름을 잊어가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아들딸을 인지하시는 것도 오락가락,
말씀을 이해 못 하셔서 의사 소통이 아주 어려운 정도입니다.
언제부터인가는 미각도 잃어버려서 맛을 잘 모르시는데도
식사 때는 물이 맛이 없다며 맛있는 물(사이다)이 있어야만 합니다.
결혼 초기 부모님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아버님께서 콘솔박스에서 캔음료를 하나 꺼내 제게 건네주셨습니다.
어머님 왈 아버님께서 늘 차 안에 음료수를 몇 개씩 보관하시는데
어찌나 아끼시는지 늘 아버님만 드시고 다른 사람은 손도 못 대게 하신다는 거죠.
아마도 갓 시집온 며느리가 예뻐서 특별히 주셨었나 봅니다.
저희 집에는 아흔 넘으신 시할머니께서 생존해 계시는데요.
저희 아버님,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시고 늘 보고 싶다고 어머님을 찾으실 정도로
당신 어머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분이셨죠.
그런데 그런 아버님도 몹쓸 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글쎄 지난 1월1일에는 막상 얼굴을 맞대고도 누군지 몰라보시고,
못 본체 뒤돌아 앉아만 계시다가 집에 가자고 일어나 나오신 겁니다.
그런데 설날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두 손을 모두 주머니에 깊숙이 넣으신 채로 할머니께 다가가셔서 조금 살피시더니
대뜸 하신다는 말씀이 "당신 누구야? 이름이 뭐야?"였습니다.
도대체 할머니가 누군지 몰라서 물으시는 건지,
아니면 알아보셨기 때문에 질문을 하시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조금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할머님께서는 "김회남, 김회남이야"라고 또박또박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소리에 아버님 "김회남...김회남이야"라고 재차 확인을 하시더니
깊숙이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손을 꺼내어 무언가를 할머님께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 손 가득 들려있던 것은 음료 캔 2개.
아마도 집에서부터 할머니를 위해서 선물하리라 준비해오신 모양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지만 잠시라도 기억이 남아 있는 동안
당신의 어머니를 위해 준비한 아버님의 가장 소중한 선물.
아버님에게 있어 음료수의 의미를 아는 저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가가 촉촉이 젖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 서울주보, 류시현 데레사님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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