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그 전화를 받았다.
몇일전에도 같은 전화를 받았었다.
"거기, 지훈이네 집이지요?"
낯선 남자의 그 소리
4 년전, 그러니까 큰아들 창훈이가 대학 1학년때의 5월 어느날이었다.
그날 아이는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고,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MT를 떠난다고 하며 집을 나섰다.
남편은 부산으로 몇일간 출장을 떠나 있었고, 그날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그 날 오후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 낯선 남자가 묻는다.
"거기 창훈이네 집이지요?"
"네.. 그런데요.."
"지금 창훈이가 우리랑 함께 있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창훈이 바꿔줄께요"
그리곤 우리 창훈이를 바꿔줬다.
순간 전화기에서는 울부짖는 창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 나 납치됐어. 엉~엉~ 엉~~"
"그게 무슨 말이야? 거기가 어딘데? 너 혼자? 친구랑?"
"친구랑 같이... 어딘지는 몰라...엉~ 엉~~엉~~~"
그리곤 창훈이를 윽박지르고 욕을 해대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리더니
다시 그 남자가 받았다.
어디냐고 물었더니, 목동의 외곽지역이라고 한다.
순간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창훈이의 울부짖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창훈이는 우리랑 잘 있으니까,
창훈이를 무사히 찾으려면 내가 불러주는 계좌로 7백만원을 입금시키라"고 한다.
7백만원이 갑자기 어디에 있냐고 지금 송금시킬 수 없다고 했더니
그럼 집전화기 끊지말고 손에 수화기를 들고서, 핸드폰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화걸어 돈을 구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선아~ 나 돈 7백만원이 필요한데, 지금 좀 보내줄 수 있니?
안 된다고? 돈이 지금 없다고?
그래. 알았어... 끊어~"
그것은 나만의 일방적인 통화였다.
내 친구가 무슨말을 하든 나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고 끊었다.
물론 집전화 수화기에 나의 소리가 다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친구에게 또 전화를 거는 척, 대화를 하는 척 하며 또 끊었다.
두 친구 모두 돈이 없다고 그런다고 그 남자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친척집에 한 번 더 전화를 해 보라고 했다.
그럼 오빠한테 해볼테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이번에도 물론 나는 가짜 통화를 했다.
"오빠~ 지금 나 7백만원이 필요한데, 보내줄 수 있어?"
그리곤 그 남자에게 보내줄 수 있다고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그때가 은행 마감시간이 지나있어서 송금을 하려면 현금인출이가 있는 곳을 가야하는데
집에서 현금인출기 있는 곳까지 가려면 20분 정도는 걸린다고 둘러댔다.
그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남자는 기다리겠다고, 되도록 빨리 송금하라고 재촉했다.
나는 그 남자가 재촉할 때마다 지금 가고 있다고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
현금인출기에 가면 전화 주겠다고 했다고 시간을 벌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유괴사건에 대한 정리를 하고 있었나 보다.
지금까지의 유괴사건을 보면 늘 돈을 요구한다.
그리고 돈만 받고, 아이는 돌려보내지 않는다.
바로 그 몇일 전에도 제주도에서 유괴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도 아이가 돌아오지 못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전화를 더 오랫동안 붙잡고 있으면서 시간을 벌어 경찰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경찰이 우리집 전화를 추적해서 범인을 잡고 창훈이도 구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난 송금을 바로 보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통장에 현금이 그만큼 있는 날이었고, 인터넷뱅킹이 가능했기 때문에
송금할 마음이 있었으면 얼마든지 송금할 수 있었지만, 시간을 벌고 있었다.
몸도 떨리고 머릿속도 떨리고 손가락도 떨리는데 나는 핸드폰으로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시간 남편은 서울로 올라오는 KTX를 타고 있는 중 이었다.
떨리는 손가락은 자꾸만 다른 키를 눌러서 제대로 문장이 만들어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겨우 겨우, 문자를 보냈다.
"창훈이가 납치됐대요. 지금 집전화 끊지 않고 있으니, 경찰에 신고해요"
그리곤 계속 그 남자와 시간을 벌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후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발신자를 보니 남편이었다.
'이 사람이 바보같이 문자로 보내지, 왜 전화를 하는거야?' 하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또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집전화 수화기를 손으로 꼭 막고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 끊어. 그 전화는 사기전화야"
"무슨 이야기?"
경찰에 신고하니까 요즘 그런 사기전화가 많이 온다고 하더라고,
창훈이는 지금 잘 있다고, 전화로 확인했다고 했다.
또 그런 전화는 중국에서 걸려오기 때문에 추적해서 범인을 잡을 수가 없단다.
순간, 이 상황의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남편과 전화 끊고 집수화기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왜 사기를 치고 그래요?"
그랬더니 상대방은 뭐라고? 하면서 욕을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하였다.
울음도 나왔다.
또 그 남자에게 욕을 퍼부어대지 못한게 한스러웠다.
왜 그 순간 반말 섞인 욕이 나오지 않고 존대말이 나오는건지...흠~~~
보이스피싱이라는 말이 나온 건 그리고도 얼마 후였다.
이런류의 사기사건이 세상이 나돌기 시작한 초기였기 때문에, 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야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
매스컴에서도 가끔씩 경종을 울려주고, 학교에서 공지문이 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 진부한 보이스피싱이
날로 세련되어지고 지능화 되면서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있다.
군대에 가 있는 아들 이름을 대면서 자기네가 데리고 있다고 하니, 원...
최근에 그런 전화를 두 번 받고 나니, 또 다시 4년전 이야기가 떠올라 몸서리가 쳐진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라면 거의가 다 가입되어 있는 싸이월드가 해킹을 당해
개인의 신분이 노출되어 있으니 더욱 조심할 일이다.
이번 두번의 전화도 해킹사건이 있고난 후에 생긴 일이니 해킹으로 인해 신분이 노출된게 아닌가 싶다.
모두 모두 조심합시다.
평소와 다른 전화가 오면 무조건 의심하고 냉철하게 생각해 봅시다.
발신자 전화번호가 뜨지 않는 전화는 특히나 조심하세요.
이런 전화는 대부분 발신자 번호가 뜨지 않거나, 해외전화처럼 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일이 생기면 아이들 핸드폰에 직접 전화해서 확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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