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떤 그림이라는 생각이 듭니까?
이 그림 제목이 뭐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제가 '되찾은 아들'아라고 서두를 꺼냈으니
아마도 여러분은 '방탕한 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 '관대한 아버지'가 제목입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의 주인공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오늘의 주제도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이 핵심입니다.
자, 이 그림을 자세히 보십시오.
얼굴 오른쪽은 아버지의 기쁜 모습인데 왼쪽 얼굴은 아들이 받았던 고통을 생각하느라 그런지
아버지의 표정이 그늘지고 고통스러워 보입니다.
여기 아버지의 가슴 쪽이 유난히 크게 열려 있죠?
왜 작가는 그렇게 표현했을까요?
그건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상징입니다.
그리고 두 개의 손을 유심히 보세요.
오른 손은 부드럽고 섬세해 보이죠?
그 손은 따뜻한 사랑이 있는 어머니의 손이고,
왼쪽의 거칠고 큰 손은 지속적 사랑을 나타내는 아버지의 손입니다.
이 그림의 주제가 아버지의 사랑이듯이 되찾은 아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가지고 나간 돈이 다 떨어지고 굶어 죽을 지경이 됐을 때 어떤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기로 결심했을까요?
아들은 먹고 입는 것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용서해 줄 것이라는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돌아가면 아버지가 자신을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안아줄 것을 알았기에 돌아갈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갔을 때 이미 그를 용서해 주기로 결심하고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의 용서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저 사람이 잘못했다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무릎을 꿇었으니까 용서한다'는 조건적인 용서지만
하느님은 무조건적인 용서를 하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라는 말씀이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사랑 넘쳐흐르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우리는 그러한 하느님 아버지를 가진 것만으로도 축복을 가득 받은 사람들입니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험난한 삶에서 큰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
그렇게 무조건적인 용서를 받고 있는 우리 역시 조건적인 용서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용서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본받아서 그렇게 용서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되찾은 아들의 기적뿐만 아니라
또 다른 어떤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한한 용서의 힘은 분명 또 하나의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저는 여러분을 무조건 용서합니다.
제가 혹 여러분에게 기분 나쁘게 한 일이 있으면 여러분도 저를 용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이태석신부님의 강론 모음집 <당신의 이름은 사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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