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 글/- 묵상 글

나도 내일 고해 신부에게 간다

by 하늘 호수 2012. 2. 17.

 

 

 

 

 

요즘은 매일 밤 구역회에 나가 고해성사를 주기에 바쁘다.

18개 구역을 다른 신부님과 함께 반씩 나누어 나가니 9개의 구역이고, 거기에다가 유스 그룹과 선데이 스쿨,

그리고 12월 마지막 대림 특강 후에 하는 고해성사까지 합하면 꽤 된다.

나는 거기에 보태어 내가 전에 있던 성당에까지 가서 도와주어야 한다.

 

정말 신부 아닌 사람은 꿈도 못 꿀 온갖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인간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가끔 개신교 신자나 불교의 스님들이 천주교의 고해성사에 대해서 못마땅해 하는 소리를 듣지만,

고해성사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것처럼 기가 막힌 성사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누구에게도 못할 소리를, 남편에게도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못할 기막힌 사연들을,

마음속에 담고 미칠 것 같은 사연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가만히 들어준다는 것,

그리고 그 내용이 고해성사의 절대적인 비밀 속에 보호된다는 것,

그리고 용서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힌 축복이다.

 

괜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고해성사에 대해 말이 많다.

고해성사는 가장 큰 선물이고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어떤 사람은 고백할 것도 별로 없고 그냥 사는 것이 매양 똑같은데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느냐고

고해성사에 대해 시큰둥해 한다.

사실 그런 사람에게는 고해성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에서 그리 큰 불꽃이 없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편하고 일상속에 단조롭게 하루하루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박하게 괴로워하고 죄에 아파하고

상처 받고 분노하고 용서할 수 없어서 마음이 부서지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약점일 수도 있다.

인생에 처절하고 절박한 계기가 없기 때문이다.

신앙도 절박하지 않고 하느님도 절박하지 않다는 얘기다.

고해성사는 마음이 미칠 것 같고 삶에 지쳐서 울어 버릴 것 같은 사람들의 몫이다.

누구라도 붙잡고 울부짖고 싶은 사람들의 몫이다.

가는 인생에 가는 시간에 내가 얼마만큼 하느님을 찾았는지 절박하게 묻고 찾는 사람들의 몫이다.

마음을 갈고닦고 또 갈고 닦고 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래서 점점 밝아져서 온통 하느님의 빛을 받아 비출 수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보라고 입에 녹음기처럼 달고 다니는 나지만,

나도 사실은 성사 보기가 겁이 날 때가 많다.

특히 이번 대림 시기는 더욱 그렇다.

사실 양심이 깨끗한 신부만큼 훌륭한 하느님의 제자도 없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내가 무수하게 고백을 들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나도 정말 인간이라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더 약하고 더 좌절하고 더 실패가 많은 인간이라는 것을 느낀다.

죄를 듣는 신부가 죄를 말하는 당신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고해성사는 두명의 죄 많고 상처 받은 인간이 모여서

오로지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에 대한 믿음과 신념으로 함께 성사를 집행하는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신앙의 신비다.

그래서 나도 내일 고해 신부에게 간다.

 

 

 

- 조민현 신부 지음, 성바오로 출판 <하늘을 나는 신부> 중에서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