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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by 하늘 호수 2012. 3. 16.

"나는 장애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19일 출간 예정… 유고작으로 보는 강영우 박사의 뒷얘기
"큰아들은 날 위해 안과의 돼, 손버그 연방검사장과 우정도 장애라는 공통분모로 시작"

"마지막 생일 케이크의 초를 끄면서 나는 소원을 빌지 않았다. 대신 감사기도를 드렸다. 내가 원했던 것보다, 내가 간구했던 것보다 이미 몇백 배의 것을 주셨는데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지금 축복 속에 마지막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췌장암으로 타계한 고(故) 강영우(1944~2012) 박사의 유고작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두란노 출판)가 19일 출간된다.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이자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 차관보까지 올랐던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써내려간 이 육필 자서전에서 "나에게 장애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며 "나는 단순히 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장애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갑자기 두 눈이 안 보이게 된 상황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피부로 느낀 채 살아야 했다. 병신이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면서 공부에 매달려 박사학위를 받았건만 한국에서는 강단에 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후 미국으로 넘어와 자식들을 낳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데 이제 와 암이라니! 주변 사람들은 삶이 너무 불공평한 게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지난 50여년과 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현재의 이 모든 것이 축복이라고 말하며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강영우 박사 가족이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위쪽)과 낙마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영화‘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와 함께 한 모습. /두란노 출판 제공
14세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강 박사는 연세대 졸업 후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갔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냈고, 유엔 세계 장애위원회 부의장과 루스벨트 재단 고문으로 일하며 전 세계 장애인의 자립과 권리를 증진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췌장암 투병 중이던 올 1월에는 국제로터리 재단 평화센터 평화장학금으로 25만달러를 기부해 훈훈한 감동을 줬다.

강 박사는 장애인 권리 증진을 위해 일하는 데 큰 힘이 된 미국 정치인들과의 인연도 책에서 소개했다. 밥 돌 미국 상원의원, 딕 손버그 전 법무장관, 아버지 부시 대통령, 케네디 가문 사람들…. 1975년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봄날, 우산을 들고 강의실로 걸어가던 강 박사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얼른 타라고 했다. 당시 연방 검사장이었던 딕 손버그였다. "검사장님처럼 바쁜 분이 어떻게 저 같은 외국 시각장애인에게 친절을 베푸십니까?" 하고 물었다. "Compassion(동정심)!" 손버그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막내아들은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이 됐다는 사연을 나중에 듣고 둘은 40년간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눴다.

강 박사는 "나의 장애는 아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도록 만든 이유였고 도전할 이유였다"고 했다.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아빠 눈을 고쳐주세요"하고 기도했던 큰아들 진석씨는 안과 의사가 됐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좋아 강 박사의 연설문 준비를 돕던 둘째 아들 진영씨는 지금 백악관 선임고문이다.

작년 11월 29일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 아내에게 쓴 마지막 편지도 책 말미에 실렸다. "당신을 처음 만난 게 벌써 50년 전입니다.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바래다주겠다고 나서던 당돌한 여대생,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날개 없는 천사였습니다."

 

- 조선일보 2012. 3.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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