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녁
-옥수복 마리아
할머니는 아이의 하늘이었습니다.
그 하늘의 치맛자락을 놓지 않았던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께서 새 참을 머리에 이시고
마을길 지나 밭두렁 논두렁길을 버선발 고무신 차림으로 사뿐히 가시어
동구 밖 양지말 논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한 그릇 가득 국수를 말아주시고,
막걸리도 한 대접씩 돌려주시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의 일입니다.
한결 가벼워진 소쿠리로 밭에 들려 감자도 캐고, 파, 고추를 따시고선
아이가 좋아하는 잘 영근 옥수수를 골라 따서 아이의 손에 쥐어 주시며,
"아가, 집에 가서 할머니가 솥에 쪄 줄거야, 잘 들고 가야한다."고 나직이 말씀하셨는데,
따스하고 넉넉하고 그윽했던 할머니의 음성이 사랑 너머의 사랑으로 하늘 너머의 하늘을 돌아서,
아이의 영혼에 빛 부신 노을로 퍼졌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아스라이 그리운 그날입니다.
- <성모기사>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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