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삶의 어느 모퉁이에선가 예고도 없이 불쑥 튀어 나와요.
그 깜짝 선물을 받지 못하고 생을 포기한다면 얼마나 억울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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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고 뛰어내리려는 순간
누가 곁에서 외마디 소리만 질러줘도 그 결심 바꿀 수 있지요.
그래서 이웃이, 친구가 필요한 거예요.
이 순간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 할머니 의사, 조병국님 말씀 중에서 -
'버려진 아이들' 주치의로 50년간 살아온 '할머니 의사' 조병국
할머니 주치의, 청진기를 다시 들다 - 6만명인지, 7만명인지 진료실 문틈으로 까만 머리 하나가 빼꼼 들어왔다 사라졌다. 이내 다시 얼굴을 내밀더니 그이에게로 냅다 달려간다. "원장님~" "진수 왔구나." 더러 주사를 놓는 바람에 그이만 보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지만 그때뿐이다. 아이들이 겁낼까봐 흰 가운도 입지 않는 그이는 몸과 마음 모두 상처투성이인 아이들에게 산처럼 크고 바다처럼 깊은 품이다. 그새 50년이 흘렀다. 서울시립아동병원과 홀트아동병원에서 '버려진 아이들'의 주치의로 살아온 세월이다. 이 고되고 험한 일을 놓을 수 없었던 건 아이들과 함께 겪은 '작은 기적들' 때문이었다고 조병국(79) 박사는 말했다. "나라고 왜 떠나고 싶지 않았겠어요. 사람인걸. 그런데요, 참 희한하게도 그때마다 과학 하는 사람의 머리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지요." 조병국은 올해 삼성생명 공익재단의 '비추미 여성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정년퇴임 한 지 20년이 돼 가지만 변변한 후임 의사가 없어 아이들 곁을 지켜온 그였다. 홀트일산복지타운으로 조 박사를 만나러 가기 전 그의 50년 의료 일기인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삼성출판사)를 찾아 읽었다. '기적'이 그 안에 있었다.
“우리 예쁜 아기, 할머니가 뽀뽀해줄게.” 조병국 원장이 네 살배기 준희(가명)를 진료하던 중 아이가 칭얼거리자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있다. 코스텔로 증후군을 앓는 준희는 오목 가슴에 음식을 삼키지 못해 배에 구멍을 뚫어 대체식을 투입하고 있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청진기를 다시 들다
―비추미대상에 파라다이스상, 국민훈장 동백장까지 올해 상을 많이 받으시네요. "소아과 의사가 아이들 돌보는 건 당연한데, 부모 없는 아이들 봐줬다고 칭찬하시나 봐요.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니 그런 것도 같고(웃음). 감사하지요." ―3년 전에 쓰신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를 가슴으로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책을 펴내면서는 이런 얘기를 누가 믿어주겠나, 60~70년대 어려웠던 시절 고아들과 입양아들 고생했던 이야기를 요즘 사람들이 이해할까 싶었는데 마음에 와 닿았다니 감사해요. 돌아가신 박완서(소설가) 선생은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그분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눈시울을 적셨다고 하더군요. 나보다 두 살 위이니 같은 세대라 그러셨을 거예요." ―자서전으로 쓰지 않고 오로지 50년간 만나고 헤어진 아이들의 이야기로 채운 까닭이 있습니까. "내 이야기란 게 뭐 있어요. 그 생명들이 소중하지. 나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어요.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는 일로, 한 줌이라도 숨이 붙어 있으면 살려내는 일로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라요. 어떤 아이는 태반과 탯줄이 달린 채 피로 얼룩진 속바지에 싸여서 들어왔다고요. 처음엔 푸줏간 남자가 직원 식당으로 고기를 배달하는 건 줄 알았는데, 경찰이었죠. 핏덩이를 보고 처음엔 놀라 자빠졌는데 하도 많이 보니까…. 아이도 아이지만 자궁 수축이 되기도 전 출혈이 멈추지 않는 몸을 끌고 어디론가 도망쳤을 산모는 살아 있을까 걱정을 하고 그랬지요." ―50년간 6만명의 아이를 진찰하셨다고요? "6만명인지, 7만명인지는 세어보지 않아 나도 잘 몰라요. 하루에 적게 보면 80명, 소아과 외래에 하루 223명이 온 게 최대였으니까. 100명 이상은 청진을 못해요. 귀가 아파서. 1972년만 해도 시립아동병원에 입원했던 3세 미만 아이들이 2300명이나 되었지요." ―유난히 버려진 아이들에게 질병이 많은 걸까요? "추운 겨울에, 그것도 거리에 버려졌으니 당연히 그렇지요. 몇끼를 굶었는지도 모르잖아요. 보육원에 들어와도 일손이 모자라니 엄마처럼 일일이 가슴에 안고 우유를 먹이지 못하고 기저귀를 머리 옆에 괴어놓고 젖병을 물린다고요. 고개만 살짝 움직여도 젖병이 빠지니 흘러나온 우유는 기저귀에 다 스며들고 아기는 영양실조 되고요. 거기다 전염병까지 돌면…. 아이들을 쑥쑥 자라게 하는 건 쌀과 우유가 아니라 엄마의 다정한 어루만짐과 따뜻한 눈빛이에요."
―끝내 소생하지 못한 아이도 많았다고요.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70년대에는 그랬어요. 힘없이 사그라지는 생명을 지켜보며 사망진단서를 써야 할 때 나의 무능함을 탓했지요. 세상 누구보다 불행한 출생을 경험한 아이들인데 마지막 가는 길도 창호지 몇장에 싸여…. 내 손으로 서명한 사망진단서의 이름들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지금도 기도합니다." ―아이의 입양 서류에는 '~에 버려졌음'이 아니라 '~에서 발견되었음'이라고 기록하신다 들었습니다. "'버려진 아이'는 슬프지만 '발견된 아이'는 희망적이잖아요. 미국 사람들한테 배웠어요. 그전만 해도 우리는 정직하게 '기아(棄兒)'라고 썼는데, 나중에 장성한 아이들이 그 단어를 보고 다시 상처를 받는다는 거예요. 제발 '어밴던(abandon;버리다)'이란 단어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고 해서 80년대부터 고쳐 쓰기 시작했지요." ―정년퇴임은 1993년에 하셨는데 왜 여태 홀트에 남아 계십니까. "후임 의사가 오긴 했는데 박봉에 노동 강도가 세니 몇 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나는 퇴직한 뒤 아들 딸 있는 캐나다로 가서 살려고 준비하는데 홀트에서 급히 전화가 걸려 왔지요. 다시 일해줄 수 없느냐고. 그래서 15년을 '전(前) 원장'이란 직함으로 더 일하다가 어깨가 너무 아파서 2008년에 완전히 청진기를 놓은 거예요. 그때 책을 썼고요. 그런데 홀트에서 또 전화가 옵디다. 별일 없으면 일산복지타운에 있는 장애아들을 봐줄 수 없느냐고. 딱 4개월만 도와주기로 하고 온 게 벌써 만 3년이에요. 징글징글한 인연이지요(웃음)." 7남매의 장녀, 전쟁 - 일찍 죽은 여동생 둘과 전쟁 고아들 보면서 다짐 "치료하는 능력을 기르자" 아버지가 의대 원서 찢자 몰래 도장 파서 입학 영혼의 소리에 울다 - 중증장애아인 현군이가 노래 부르면 울음바다 어떻게 더 많이 배우고 더 가진 이를 위로하는지… 하나님, 참 공평하지요 아이들이 희망이다 - 희망이라는 깜짝 선물 받지못하고 생을 포기하면 얼마나 억울한가요 母性이라는 마법 - 입양, 어렵지 않아요 아이의 닫힌 마음을 여는 마법은 누구에게나 있죠 ―일산복지타운은 전에 일하셨던 홀트아동병원과는 다른 곳인가 봅니다. "홀트를 해외 입양만 보내는 곳으로 아는 분들이 많은데, 장애인 치료와 복지에도 오랫동안 헌신해 왔지요. 일산복지타운은 장애아라 어디에도 입양되지 못한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로 시작했어요. 창립자인 해리 홀트는 장애인 아파트를 짓는 게 꿈이었는데, 딸(말리 홀트)이 그 사명을 완수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영혼의 소리'에 울다 정신 지체와 발달 장애로 천방지축 날뛰던 현군이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영혼의 소리로'의 단원이 된 후부터였다. 홀트일산복지타운의 중증 장애인들로 구성된 합창단. 일주일에 세 번 합창단 연습이 있는 날에는 누구보다 침착하게 집중력을 발휘했다. 악보도 못 보고 글도 못 읽지만 아이는 지휘자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박자와 음정을 곧잘 따라 했고 마침내 합창단의 솔로가 되었다. ―현군이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 객석이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얘기가 책에 나옵니다. "목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현군이가 어떻게 저보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걸까, 거칠고 척박한 마음들에서 어떻게 이토록 맑은 눈물을 끌어낼 수 있는 걸까 생각했지요. 하나님, 참 공평하지요?(웃음)" ―현군이는 지금 어떤 일을 합니까? "홀트특수고등학교를 나와 전문대 코스를 밟고 있지요. 전기 부품 만드는 기술자이지만 여전히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한 아이랍니다." ―뇌성마비였던 영수가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가 재활의학 전문의가 되어 박사님을 찾아온 이야기도 아름다웠습니다. "자신처럼 사지를 마음껏 움직일 수 없는 사람, 특히 아이들을 치료하고 싶어 했지요. 영수는 내게 또 한 번 기적 같은 소식을 전해주었어요. 아내가 불임이라 첫아이를 입양했는데, 그러고 3년 뒤 임신을 한 거예요. 두 딸을 얼마나 잘 키우는지. 둘째 딸 이름이 뭔지 아세요? 말리 홀트와 내 이름을 딴 '말리 병국'이랍니다. 하하하!" ―50년간 아이들을 만나면서 '모성(母性)이 무엇일까' 고민했다고 쓰셨더군요. "열 달 동안 피와 살을 함께 나누던 생명을 세상에 내놓는 즉시 버리는 엄마도 보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엄마도 보았지요. 엄마가 되는 데 임신과 출산 경험이 반드시 필요할까요? 아이를 품에 안고 눈을 맞추고 똥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모성애는 시작되지요." ―그런 위대한 모성들을 수없이 만나셨지요? 그들이 꼭 미국이나 스웨덴이 아니라 한국에도 많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그럼요. 그들이 또 대단한 지식인이나 부자도 아니에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죠. 한 아이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고, 무표정한 얼굴에 미소를 찾아줄 마법 같은 힘은 누구에게나 있답니다." ◇母性이라는 마법의 힘 ―그래도 입양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박사님 역시 '장애아는 첫째를 건강하게 길러본 경험이 있는 부모가 데려가는 게 좋다'고 충고하셨고요. "그저 식구 수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것뿐이라고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분들이 입양했으면 좋겠어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음의 상처는 몸의 상처보다 더디 낫는다는 사실이죠. 무한한 포용과 인내가 필요해요. 입양 부모는 아이에게 슬픔을 치유하는 안식처이자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주는 전진기지라고 할 수 있지요." ―파양하는 경우, 또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처럼 양부모의 학대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이죠. 그래서 요즘엔 해외 입양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어요. 입양된 아이 중에도 왜 자기를 타국으로 보냈느냐며 원망하는 경우가 있고요. 그런데 아동 학대는 친부모들에게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차라리 보육원에 그대로 놔두지 왜 자기를 해외로 보냈느냐고 원망하는 아이들은 당시의 보육원 형편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아 그렇게 말하지요. 나는 조금 부족해도 멘토, 롤모델이 돼줄 수 있는 양부모,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가족이 보육원보다 훨씬 좋다는 입장입니다." ―해외 입양 전면 금지령이 내려졌던 1989년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쓰셨습니다. "곧 없던 일이 돼버렸지만 지난 몇십년간 내가 한 일이 고작 고아 수출이었나 하는 생각에 상처가 되더라고요. 우리는 그저 집 없고 병든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가정과 부모를 찾아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 부모가 국내에 없으니 해외로 눈을 돌렸던 것뿐인데. " ―지금도 아이들이 원장님을 찾아오지요? "그럼요. 처음엔 자기가 자랐던 고아원에 갔다가 자기를 마지막으로 진료한 사람으로 기록돼 있는 'Cho'(조)를 찾아 여기까지 오지요. 내가 '너 기저귀 차던 시절 고추까지 만져봤어' 하면 날 부둥켜안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섯 번 이상 내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으면 '당신이 한국의 내 엄마'라며 자랑스러워하지요." ―자기를 버린 부모를 원망하진 않습니까. "그들이 한국을 찾는 건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어서이지 부모를 찾아 원망하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자기를 버려야만 했을 때 엄마가 외롭게 겪었을 고통을 안쓰러워하지요. 이렇게 잘 컸으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말하러 왔는데 부모는 차마 자식을 볼 면목이 없어 나타나지 않는 거고. 열의 아홉이 그렇게 얘기해요. 대견하지요."
◇전쟁, 그리고 국제 거지
- 조선일보 토요섹션 기사 전문- (201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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