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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글/- 묵상 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마지막 이야기 중에서

by 하늘 호수 2017. 7. 28.






"신앙이란

세상의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손을 잡은 채로

고요히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사랑을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것일 수 없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2013년2월23일, 교황직 사임 직전 교황청 사순 시기 피정을 마치며 -


*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따르던 이들은 그의 많은 것을 그리워 한다.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하는 지혜로운 연설,

다채로운 표현, 정직한 분석, 깊은 인내의 자세, 어떤 사람도 구현할 수 없었던 기품,

수줍음을 타는 웃음, 찰리 채플린처럼 무대에 올라갈 때 약간 서투른 움직임,

그릇된 환상과 광신에 빠져드는 것을 막는 이성을 신앙의 보증으로 고집하는 태도,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의 현대적인 사고방식 등을 그리워한다.


*


페터 : 우리는 교황이 홀로 결단하여 자신의 직무에서 사임하는 역사적 사건을 보았습니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는 처음으로, 직무를 수행해 오던 현 교황이 스스로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입니다. 교황님은 이러한 혁명적인 방식을 통해, 근대에 어느 누구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교황권을 강력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이것은 더 현대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 인간적이며, 베드로 사도의 근원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2010년 교황님은 <세상의 빛>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맡은 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분명하게 들 때는 직무에서 물러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의무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을 내릴 때 내적으로 격렬한 갈등이 있었나요?

교황 : 당연히 이 결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천 년 동안 사임한 교황이 없었고, 1294년에 있었던 사임도 예외였기 때문에 사임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항상 다시 곰곰이 생각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에게 사임은, 극도로 힘든 내적 갈등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나 분명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책임과 중대성에 대해서는 철저한 성찰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하느님 앞에서 제 자신을 성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를 산산이 부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페터 : 당시 교황님은 우울한 상태였나요?

교황 : 우울한 상태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건강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멕시코와 쿠바에 사목 방문을 다녀온 뒤로 매우 지친 상태였습니다. 의사도 저에게 이제는 더 이상 오랫동안 비행기를 타는 일은 무리라고 말했습니다. 때마침 순번에 따라서 다음 세계 청년 대회가

2014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되어야 했는데, 리우 월드컵 때문에 한해 당겨졌습니다. 저는 새 교황이 리우데자네이루에 방문할 수 있도록 사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멕시코와 쿠바를 다녀온 후에 사임을 서서히 준비했던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페터 : 교황님은 사임에 대해 한순간이라도 후회한 적이 있나요?

교황 : 없습니다! 정말 없습니다. 저는 사임이 옳은 일이었다고 매일 생각합니다.



페터 : 이임사의 두 번째 말씀, 그러니까 "저는 십자가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것은 아주 확고한 말씀입니다.

교황 : 기이하게도 저의 사임 선언이 제가 십자가에서 내려와 더 안락한 삶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 또한 제가 각오해야 할 비난입니다. 저는 사임을 결정하기 전에 이런 비난을 내적으로 마주해야 했습니다. 저는 사임이 일종의 도피나 어떤 실제적인 압박으로부터의 피신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확신합니다. 거기에 실제적인 압박도 없었으며, 십자가로 향하게 하는 신앙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침묵의 고요 속에서 온 교회를 위해 기도에 집중하면서, 고통을 겪으시는 주님과 결합하여 머무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임은 도피가 아니라 저의 봉사직에 충실히 머무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페터 : 당신 교황님은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교황 : 많은 것들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진심 어린 이별, 협력자들이 흘리는 눈물, '착한 목자'의 집에 쓰여 있는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라는 글귀, 로마의 종소리 등이 제 마음을 크게 움직였습니다. ( 이 말을 하는 교황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쨌든 마음이 크게 동요하는 것을 느끼고, 로마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을 때 저는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에는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페터 : 교황님이 좋아하는 기도가 있나요?

교황 : 네, 저도 좋아하는 기도가 있지요. 먼저 이냐시오 데로욜라 성인의 기도입니다. "받으소서, 주여. 저의 온 삶을 받아들이소서. 저의 기억, 저의 이해, 저의 온 의지를 받아들이소서. 저의 모든 것, 제가 가진 모든 것은 당신이 제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기도도 좋아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천국을 약속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당신께 등을 돌리지 않는 것은 지옥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주님, 저를 매료시키는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제 마음을 뒤흔든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모욕을 받으셨던 당신의 모습입니다. 제 영혼을 이끈 것은 당신이 받으셨던 수치와 죽음입니다." 또 플뤼에의 니콜라오 성인의 기도도 좋아합니다. "주님,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소서."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기도는 성가책에서 보았던 것으로 성가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16세기 베드로 가니시오 성인의 '보편적인 기도' 입니다. 이 성가는 여전히 불리고 있지요.




페터 : 사람들은 늘 이러한 물음을 제기합니다. "우리가 말하고 우리가 도움을 구하는 하느님이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는 그분을 어디에서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지금 늘 수백억 개의 행성과 셀 수 없는 태양계가 있는 우주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껏 찾았던 곳에는 하느님이 앉아 계실 만한 곳, 이른바 하늘나라로 상상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교황 : (웃으며) 네, 맞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앉아 계시는 그런 장소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친히 모든 장소, 어디에나 계십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곳을 찾을 수 없지만, 하느님의 흔적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물질의 구성과 현실의 이성 전체에 그분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이를 보는 곳에서도 하느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악을 보기도 하지만 선행과 사랑도 봅니다. 그곳이 바로 하느님이 계시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공간적인 표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표상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모든 것이 무한하지 않지만 우리 인간은 무한하다고 특징지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현존은 그 어떤 장소의 안이나 밖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현존은 완전히 다른 현존입니다.

  우리가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의 사상을 쇄신하고, 이런 공간적인 표상을 완전히 버리고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어떤 두 사람이 대륙을 사이에 두고도 서로 맞닿을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공간적인 차원과는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영혼의 현존이 있는 것처럼, 하느님은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실재(實在)자체이십니다. 또한 모든 실재를 지탱하는 실재이십니다. 그리고 이런 실재를 위해 우리는 어떤 장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소는 이미 한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며, 모든 것이자 모든 시간 위에 존재하는 분이지만, 시간 자체가 아니고 오히려 시간을 창조하고 그 위에 항상 현존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것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상(人間像) 전체가 변화되었던 것처럼 많은 것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인류의 역사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약 6천 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동안 알았던 시간의 구조, 역사의 구조가 오늘날과 다르게 묘사됩니다. 신학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더 근원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인간에게 다시 상상의 가능성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신학과 신앙을 현대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곧 현대를 이해하여 상상의 도식을 만들거나, 사람들이 하느님을 어떤 공간에서 찾지 않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지요. 바로 그 부분에 신학이 기여살 수 있는 점이 아주 많습니다.




페터 : 교황님이 앞서 표현했던 것처럼, 교황님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있습니다. 교황님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나요?

교황 : 죽음은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정한 행동을 취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마지막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내적인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 세상을 떠나 그분 앞에, 성인들과 친구들 앞에, 그리고 낯선 사람들 앞에 머물게 될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삶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내적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지요.

페터 : 교황님은 이를 어떻게 준비하나요?

교황 : 저는 단순히 묵상을 통해 준비합니다. 저는 항상 반복적으로 마지막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준비하고, 특히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죽음을 표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그분과의 만남을 향해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을 제 스스로 의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페터 : 이 마지막 대담의 마지막 질문을 하겠습니다. '사랑'은 교황님이 학생으로서, 학자로서, 그리고 교황으로서 주목했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랑은 교황님의 일생에서 무엇이었나요? 교황님은 사랑을 어떻게 알았고, 어떻게 체험했나요? 혹시 이것이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주제였나요?

교황 : 사랑은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주제가 아닙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만일 사랑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에 대해서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먼저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에게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경험을 상세하게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다양한 차원과 형태로 사랑을 맛보았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받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돌려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사랑이 더욱더 근본적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말하자면 사람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자기 자신, 나아가 타인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 바로 사랑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점점 더 명확하게 된 것은 하느님이 엄청난 권능의 소유자나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며, 그분은 사랑 자체이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 때문에 저의 삶이 그분에 의해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 권능에 의해 우리의 삶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  패터 제발트 대담 및 정리, 김선태 옮김, 가톨릭출판사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마지막 이야기>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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