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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 전시 및 주보사진

아현동 사진방 전시회 - 녹색갈증

by 하늘 호수 2024. 1. 21.

아현동 사진방

녹색갈증

Biophilia

변은자, 이복희, 이용열, 이윤순, 최용순, 홍덕희

2024.1.24(수)-29(월)

인사1010 b1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0길 10 ☏ 02 - 722 - 8780

변은자

추상의 벽

일상에서 건져낸 추상

보이는 것들만 보다 보면 일상은 늘 뻔한 느낌.

고정관념 속에 파묻힌 일반적인 의미들은 하루하루 정해진 틀 안에서

되풀이되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오늘은 자칫 무료해진다.

언젠가 무심코 마주친 폐허의 장소에서 예사롭지 않은 흔적을

발견하였다. 지나치기 십상인 장면들 가운데 감춰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고 싶었다.

들여다보고 또 보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흘러 마침내

가슴에 품었던 의미를 슬며시 건넨다.

말로는 다 못 전하는 재생의 의지와 가슴속에 차오르는 환희의

함성을 마음에 담아 전해본다. 어디까지 다가갈지 알 수는 없지만 서로 나누어 각자의 삶에

새로운 기운을 북돋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복희

나무

나무

어느날 마주친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 끝에 걸린 구름 하나. 구름에 내 마음을 실어 어디론가 날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무엇이 있을까? 그러다 문득 구름을 잡고 있는 겨울 나뭇가지가 더 정스럽고 애잔해 보였다. 어쩌면 나의 삶의 모습과 같아 보여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사계절의 아름다운 삶을 다 보내고 모든 것 훌훌 털어버리고 또 다른 삶(희망)을 기다리는 모습 속에서 진솔된 나를 보았다. 넌 나였고, 나 또한 너였음에 네 주의를 맴돌며 귀를 기울였다. ᆢ네 속에 있어 봄이면 태어날 작은 씨앗들의 속삭이는 소리. 난 살며시 카메라를 꺼내어 담아본다. 너와 나의 희망을...

이용열

침목(枕木)의 침묵(沈默)

침목(枕木)의 침묵(沈默)

사진가의 눈에는 온 세상이 보물이다. 누군가 “사진은 찍는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있다" 라고 했다. 그 사진 속엔 사물을 응시하는 따뜻한 시선과 숨겨진 감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진가들은 무엇을 담을지 항상 고민하며 산다. 또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색다른 관점에서 비틀어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Pattern들을 찾아다닌다. 단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함과 희소성 그리고 사물의 구성을 통한 조형미를 찾는 작업은 고되지만 흥분과 기쁨이기도 하다.

사진은 신묘한 기운을 담고 있다. 시시각각 사라지는 실체를 이미지로 담아내어 영원으로 이끄는 것, 바로 사진의 힘이다.

눈 오는 겨울, 철길을 걸으며 침목의 생멸을 처음 목도한 후 강렬함에 이끌려 운명적으로 침목을 향하게 되었다. 침목은 기차가 안전하게 오고 갈수 있도록 선로 아래에서 낮은 자세로 하중을 땅으로 연결해 주는 희생과 버팀목으로 상징되는 존재이다. 폐 나무 침목은 세월의 변화와 함께 치장과 장식을 위한 또 다른 쓰임으로 활용되며 수많은 인생 2막의 야사를 들려준다. 무심한 세월 속에서 낡고 해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며 묵언의 수행으로 전해지는 삶의 이야기는 인간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술이란 진지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한다. 침목(枕木)의 침묵(沈默)들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지평선과 맞닿은 철길의 끝에서 조우하게 될 또 다른 침묵의 공간에서 느끼는 고요가 궁금할 뿐이다.

이윤순

산티아고 가는 길

산티아고 순례길!

하느님과 함께한 고귀한 길!

그분은 언제나 어디에나 계셨다. 내가 찾기만 하면 계셨다. 들길이나 산길을 가만히 걸을 때, 푸른 하늘에 떠 가는 흰구름을 바라볼 때, 지지배배 새소리와 풀벌레소리를 들을 때, 숲길을 걸으며 산들바람을 맞을 때, 걸음 걸음마다 그분은 늘 내 곁에 계셨다.

한치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을 걸을 때, 억수의 빗길을 철벅철벅 걸을 때, 한낮의 땡볕길을 땀흘려 걸을 때, 오르막 자갈길을 낑낑 오를 때도 그분은 힘내라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큰 도시의 뾰족뾰족 고딕 성당에서는 화려한 채색유리로, 중후한 로마네스크 성당에서는 어둠 속 빛으로, 시골 마을 작은 성당에서는 고요함으로 두 손 모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렇게 나는 그분의 품에서 사진을 찍었다. 여기 감사한 마음이 담긴 부족한 내 작품들을 그분께 드리고 싶다.

최용순

자연의 결

홍덕희

나의 바다

나의 바다

내 삶이 팍팍해질 때 달려가던 곳은 어김없이 바다였다. 현실이 나를 화나고 속상하게 할 때 도망가듯 강릉행 고속버스를 타곤 하였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닷가에 서서 한없이 바다를 바라 보았다. 먼바다의 파도는 성난 듯 세찬 물결을 이루며 밀려온다. 성난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히고, 갯바위에 부딪힌 파도는 하얀 포말로 부서져 물거품이 된다. 밀려오는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처얼썩 소리에 속이 시원했고, 하얀 포말로 부서지며 달려오는 파도를 한없이 바라보곤 하였다. 얼굴에 부딪히는 한겨울의 차가운 바람결조차도 시원했다. 그렇게 서서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복잡했던 마음도 어느 정도 정리되곤 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하였던 기억이 난다.

바다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계절에 따라 다르고. 날씨에 따라 다르고. 시간에 따라 다르고. 장소에 따라 다르고 또 내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바다는 하늘색을 닮았다. 하늘이 파란 날의 바다는 파란 바다이고, 흐린 날의 바다는 회색 바다다. 하늘이 옥색일 때는 여지없이 바다도 옥색이다. 맑음과 흐림과 폭풍우를 다 받아내는 바다는 어쩜 품 넓은 어머니일지도 모르겠다.

성난 파도를 잠재울 수 있는 기법을 배웠다. 한 컷을 담아내는데 긴 시간을 주면 아무리 성난 파도도 부드럽게 잠재울 수 있다. 일렁이는 파도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사물도 긴 시간으로 담아낸 사진에서는 사물이 명확히 보일뿐더러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나는 그 고요와 평화를 사랑 한다. 이는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며 맛보는 마음의 고요와 평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때로는 고요해진 마음속에서 신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바다를 담을 때 장노출을 자주 이용한다. 장노출 사진을 담으며 가끔은 인간관계에서나 신앙적으로 깨달음이 얻어지기도 한다. 내 마음에 폭풍우를 담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의 의견도 선함도 배려도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소란함을 잠시 멈추고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으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보인다. 어쩜 하느님을 만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느님도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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