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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 전시 및 주보사진

홍덕희 사진전 -나의 바다 (갤러리인사1010) 후기

by 하늘 호수 2024. 2. 5.

 

유튜버 갤러리 브리핑 님이 제작하신 영상

 

나의 바다

홍덕희

내 삶이 팍팍해질 때 달려가던 곳은 어김없이 바닥였다. 현실이 나를 화나고 속상하게할 때 도망가듯 강릉행 고속버스를 타곤 하였다.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바닷가에 서서 한없이 바다를 바라 보았다. 먼바다의 파도는 성남 듯 세찬 물결을 이루며 밀려온다. 성난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히고, 갯바위에 부딪친 파도는 하얀 포말로 부서져 물거품이 된다. 밀려오는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처벌색 소리에 속이 시원했고, 하얀 포말로 부서지며 달려오는 파도를 한없이 바라보곤 하였다. 얼굴에 부딪히는 한겨울의 차가운 바람결조차도 시원했다. 그렇게 서서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복잡 했던 마음도 어느 정도 정리되곤 하였다. 그렇게 허가를 여러번 하였던 기억이 난다.

바다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계절에 따라 다르고, 날씨에 따라 다르고, 시간에 따라 다르고, 장소에 따라 다르고 또 내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바다는 하늘색을 닮았다. 하늘이 파란 날의 바다는 파란 바다이고, 흐린 날의 바다는 회색 바다다. 하늘이 옥색일때는 여지없이 바다도 옥색이다. 맑음과 흐림과 폭풍우를 다 받아내는 바다는 어쩜 품 넓은 어머니일지도 모르겠다.

성난 파도를 잠재울 수 있는 기법을 배웠다. 할 것을 담아내는데 긴 시간을 주면 아무리 성난 파도도 부드럽게 잠재울 수 있다. 일렁이는 파도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사물도 긴 시간으로 담아낸 사진에서는 사물이 명확히 보일뿐더러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나는 그 고요와 평화를 사랑 한다. 이는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며 맛보는 마음의 고요와 평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때로는 고요해진 마음속에서 신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바다를 담을 때 장노출을 자주 이용한다. 장노출 사진을 담으며 가끔은 인간 관계에서나 신앙적으로 깨달음이 얻어지기도 한다. 내 마음에 폭풍우를 담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의 의견도 선함도 배려도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소란함을 잠시 멈추고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으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보인다. 어쩜 하느님을 만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느님도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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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담은 평화와 순수의 결정체, 홍덕희 '나의 바다'

신경훈(언론인) 사진가

홍덕희의 '나의 바다'는 바다를 촬영한 사진 연작이다. 바다를 담았다고 하지만, 우리가 아는 바다의 형태는 드러나지 않았다. 프레임을 분할하고 있는 면들의 경계는 불분명하고, 꿈결에서나 본 듯한,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색채로 가득 차 있다. 각각의 작품은 비슷한 구도를 갖추고 있지만, 독특한 기운이 충만하다. 때론 고독감이 넘실대고, 때론 신비한 색채가 시선을 매혹시킨다. 또한 한지에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미묘한 농담(濃淡)이 프레임을 채우고 있다. '나의 바다' 연작의 흡인력은 독특한 색조와 구도에서 나온다.

작가는 한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긴시간의 노출을 통해 바닷물의 일렁임, 구름, 안개 등 바다를 둘러싼 모든 사물의 움직임을 담아냈다. 같은 곳에서도 촬영한 시간대, 날씨, 노출의 정도에 따라 다채로운 색조와 형태가 드러났다. 또한, 홍덕희의 작품에 하늘과 바다 외에 바위나 섬 등 다른 사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바다로부터 바다 풍경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색과 형상을 포착해낸 것이다. 그래서 감상자들은 촬영한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설명이 없으면, 사진인지 그림인지도 불분명하다. 작가의 의도, 심리 상태, 자연의 조건 등이 투영된 그 작품들은 카메라를 사용했을 뿐, 회화에 가깝다. 시간의 흐름과 자연 현상 그리고 작가의 내면이 조화를 이뤄관람자들에게 오묘한 화음을 들려준다.

바다는 인간에게 초월적 존재다.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 거대한 자연은 인간을 압도한다. 경이롭고 변화무쌍한 바다를 보며 인간은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해진다. 또한 무한한 생명을 품은 어머니와도 같은 바다 앞에서 인간은 평화와 위안을 얻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이 바다에서 영감을 얻었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 대표적 작가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회화를 이끌었던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이다. 그의 대표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한 남성이 해변의 바위 위에서. 안개가 거칠게 피어오르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다. 이 작품은 광활하고 압도적인 대자연과 그 앞에서 고뇌하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극적으로 묘사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홍덕희 작품들은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색면 추상주의 화가로 평가되는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1912~2004)의 감수성과 닿아 있다. 마틴은 직선과 면으로 분할된 캔버스를 파스텔 톤의 색으로 칠해 바다와 수평선 그리고 하늘을 묘사했다. 그가 중년 이후 고향 바닷가 오두막에 살며, 바다를 형상화한 작품들엔 자연과 인생에 대한 작가의 성찰과 고뇌가 담겨있다. 오묘한 색감과 단순한 구도를 갖춘 그의 작품 앞에 서면 관람객들은 작가의 승화된 감정을 공감하게 된다. 홍덕희가 그런 화가들의 유파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형이상학적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숭고의 미학'이 깔려 있다. '숭고의 감정'은 눈을 당장 매혹시키는 어여쁨이 아니다. 작가의 차원 높은 철학이나 감정이 감상자에게 공감을 일으킬 때 솟아난다. 그런 작품을 보며 감상자 들은 현실을 재현한 작품에서 경험할 수 없는 무엇이 가슴 속에서 샘솟는 걸 느낀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희열이다.

우리는 왜 '나의 바다' 연작을 보며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작가는 긴 시간 바닷가에 서서 거대하고 변화무쌍한 바다 너머 존재하는 절대자를 마주하며 자신이 겪었던 모든 슬픔과 기쁨, 좌절과 희망을 되돌아봤을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을 둘러싼 두꺼운 표피를 갖게 된다. 삶은 투쟁이다. 상처받고 거기에 반응하고, 갈등과 욕망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본래 자아 위에 껍질을 뒤집어쓰게 된다. 홍덕희에게 사진 촬영은 예술 행위를 넘어선다. 자신의 깊은 곳 어디엔가 존재하는 자아를 찾고 치유하는 순례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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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님의 드론 영상-

갤러리인사1010, 1층 -홍덕희 개인전 - 나의 바다

갤러리인사1010, B1 -녹색갈증( 6인그룹전 - 홍덕희, 최용순, 이복희, 변은자, 이윤순, 이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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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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