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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글/- 묵상 글

평화를 받을 마음, 평화를 주는 마음

by 하늘 호수 2007. 7. 8.

 

 

평화를 받을 마음, 평화를 주는 마음

 

 

    

 

  7월초 지독하게 무더운 날, 한 대학생이 도끼로 두 여인을 살해하는 사건으로부터 토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소설은 시작된다. 이 사건은, 그 대학생의 생각대로라면, 존해할 가치가 없는것을 존재할 가치가 있는 인간이 죽인 것에 불과한 살해일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초인적인 의지와는 달리 걷잡을 수 없는 내부갈등으로 번민에 빠진 그는 순진하고 신앙심이 돈독한 거리의 한 여인의사랑에 의지하여, 자신이 더럽힌 대지에 입맞춤한 후 자수한다. 그렇다고 회오한 그의 넋 속까지 정화된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유형지에서의 어느 날, 그는 이런 꿈을 꾼다. 일종의 새로운 선모충에 전염된 사람들이 자기고집에 사로잡히고, 서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까닭없이 중오하면서 혼란은 가중하고, 질병은 더욱 창궐해 간다는 꿈이다. 꿈에서 깬 그는 그제야 비로소 새 인간으로 부활한다.

 

 

 

 

  나는 '죄와 벌'을 읽을 때면 늘 부끄럽다.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자신이 더럽힌 대지에 입맞춤하며 통회하기는 커녕 지은 죄를 교활하게 감춘 채 선한 척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선모충에 전염된 사람들처럼 아집과 몰이해와 증오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몰골이 부끄럽다. 불평과 불화에서 깨어나는 것이 평화일진대, 미망에서 허우적대는 주제에 주일마다 입으로는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하는 내 위선이 부끄럽다.

 

 

 

 

  평화의 히브리어인 "샬롬"은 '완전함'이라는 뜻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말이라고 하며, 사전적 풀이에 따르면,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는 사랑과 화해로 원수와도 한 몸을 이루는 평화라고 한다. 이토록 완전하면서도 원대한 평화까지는 감히 바라지 못한다 해도, 그저 나와 둘레의 우리가 맘과 몸이 모두 건강하며 평안하고 한솥밥을 나누며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소박한 평화의 삶을 위해 이제부터라도 작은 도구가 되어 살고 싶다.

 

 

 

 

  35년 동안, 내가 간여하는 숭실 OB남성합창단은 크고 작은 연주회 때마다 '평화의 기도'를 불러왔다. 그리고 그 때마다 많은 분이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한낱 징 소리, 한낱 꽹과리 소리가 되지 않도록 평화를 받을 마음과 평화를 주려는 마음으로 충만하여 사랑과 용서를, 일치와 믿음을,

진리와 희망을, 그리고 광명과 기쁨을 심도록 해야겠다. 그렇다. 평화를 받을 마음이 있으면 평화가 그 위에 머무르고, 평화를 주는 마음이 있으면 더 더욱 평화롭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 않은가!

 

 

 

 

  평화로 오셨고, 평화를 전하시며, 평화를 이루시는 삶을 사셨던 예수님의 사랑으로부터 이제라고 평화를 누리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 오, 주님 !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신재용 프란치스코. 해성한의원장

 

                                        서울주보 (2007. 7. 8.) 에서

                                   

 

  
숭실 OB 남성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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