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느님의 이름
그러던 어느 날, 청년연합회에서 함께 활동하던 한 후배가 훌쩍
수녀원이란 낯선 곳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수녀원... 본당 수녀원 말고 또 다른 곳이 있었나,..엥 ? '
'수녀원이 200개가 넘는다고? '
그리고 또 어느 날 예비수녀님이 되어서 휴가를 나온 그 휴배와 마주앉아
차 한 잔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후배는 "언니, 수녀원에 올래?" 혹은 "수녀원에 사니까 정말 좋아~"
라는 말을 단 한마디 안 했지만
그녀의 수녀원 생활을 조용히 또 솔직히 듣고 난 뒤 제 머릿속엔
'수녀원'이라는 세 글자가 확고히 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 주보에서 노틀담 수녀회의 성소모임 공지를 보고 첫 방문하게 되고
그리고 4달 뒤 저는 수녀원에 입회를 하였습니다.
활짝 웃으면서..
너무 후다닥 벌어진 일이라 '정신 차리고 보니 수녀원이더라.'라는 말이 딱 맞았지요.
그랬던 만큼 더 기쁘고 즐거웠지만
또 한편으론 너무 빠른 결정에 남들이 이미 했던 고민을
수녀원에 들어와서 하느라 열심히 끙끙거리며 성장통을 앓아야 했지요.
왜 이곳에서 살아야 할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수녀원에서 1년쯤 살았을 때
어떤 책이 우연히 손에 잡혀 읽게 되었습니다.
수도자가 되기 위해 읽어야할 필독서도, 유명한 영성서적도 아니었던 그 책을 읽고
저는 몇 시간 동안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그곳에는 절름발이 소년과
의리도, 전혀 멋지지도 않은 3류 불량배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건달이 아무리 때리고 쫓아내고 속이고 팔아먹어도
결국 또 어린 여동생과 함께 자기들을 버린 엄마를 찾아달라며
계속 불량배에게 매달리는 절름발이 소년.
바로 나의 예수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생각에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고 외면했고 일부러 모른척한
그 많은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찾아오시고 또 찾아오시는 바보 예수님.
맨날 속아도 또 헤헤 웃으며 또 믿어주시는 바보 하느님.
내가 아무리 가진 것이 없고 그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애정을 가졌다손 치더라도
그분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내 죄의 십자가를 대신 지시느라 쩔뚝거리는 발걸음으로라도
나를 끝내 찾아오시는 그분을 만난 후
나의 하느님의 이름은 바보 같은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피정을 마치고 저희 수녀회의 관구장 수녀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어떤 하느님을 만났느냐고.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보 하느님이요" 했더니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고 미소만 지으셨습니다.
아... 너무 희한한 하느님을 만났고
또 그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해해주시는 분을 한꺼번에 만나는 은총을
한껏 받은 너무나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목5동성당 잡지 <해나리> , 윤마리아 라파엘 수녀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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