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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바람 속에 - 이해인 수녀의 법정스님 추도시

by 하늘 호수 2010. 3. 15.

 

 

 

 

3월의 바람 속에

 

차갑고도 따뜻한 봄눈이 좋아

3월의 눈꽃 속에 정토로 떠나신 스님

'나 성미가 급한 편이야'하시더니

꽃피는 것도 보지 않고 서둘러 가셨네요

마지막으로 누우실 조그만 집도 마다하시고

스님의 혼이 담긴 책들까지 절판을 하라시며

아직 보내 드릴 준비가 덜 된 우리 곁을

냉정하게 떠나가신 야속한 스님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을 정화시키려

활활 타는 불길 속으로 들어가셨나요

이기심으로 가득 찬 중생들을 깨우치시고자

타고 타서 한 줌의 재가 되신 것인가요

스님의 당부처럼 스님을 못 놓아 드리는

쓰라린 그리움을 어찌할까요

타지 않는 깊은 슬픔 어찌할까요

많이 사랑한 이별의 슬픔이 낳아준 눈물은

갈수록 맑고 영롱한 사리가 되고

스님을 향한 사람들의 존경은 환희심 가득한

자비의 선행으로 더 넓게 이어질 것입니다

종파를 초월한 끝없는 기도는 연꽃으로 피어나고

하늘까지 닿는 평화의 탑이 될 것입니다

하얀 연기 속에 침묵으로 잔기침하시는 스님

소나무 같으신 삶과 지혜의 가르침들 고맙습니다

청정한 삶 가꾸라고 우리를 재촉하시며

3월의 바람 속에 길 떠나신 스님, 안녕히 가십시오

언제라도 3월의 바람으로 다시 오십시오. 우리에게.

 

<이해인 수녀의 법정스님 추도시>

 

 

 

  

글로는 '어린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처음 만났지요. 글이 원래 그 사람 자체라고 하는데, 스님의 글은 따뜻하고 인간적이면서도 문체는 무르지 않고 깔끔하기 그지없어 딱 스님의 성격 그대로더군요. 제가 시인이니까 시인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면 스님의 글은 '눈 쌓인 산기슭에 서 있는 소나무'입니다. 스님께서 투병하시며 '맑고 향기롭게'회지에 쓰신 글도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 아프게 되면 그 사람만 아픈 게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친분의 농도만큼 같이 앓게 된다'는 내용이었어요. 평소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을 스님은 적절한 언어와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으로 표현하셨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글을 사랑하고, 그 글과 어울리는 그분의 인간적 성품을 사랑한 것 아닐까요?"

- <조선 인터뷰- '30년 교유' 법정 스님 떠나보낸 이해인 수녀>  중에서 -

 

 

법정 스님은 입적 직전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고 했다. 빈손으로 와 빈손으로 간 스님이었지만 생전에 스님 손은 "내것'을 남에게 나누주는 데 열심이었다. 오랫동안 어려운 학생들에게 남몰래 장학금을 기부해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스님이 실천했던 '무소유'와 '나눔'의 정신 앞에 새삼 모든 이가 고개를 숙였다. 스님 몸은 대나무 평상에 누워 불길 속에서 사라졌지만 세속의 탐욕에 물들지 않았던 스님의 삶은 맑은 향기를 남겼다.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나고 향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는 법이다. 스님이 실천을 통해 풍겨냈던 삶의 향내를 사회 구석구석에 배게 해서 많은 이가 그 향기를 맡고 스스로도 그런 향기를 내겠다고 노력하게 된다면, 스님의 향기는 우리의 영원한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조선 일보 사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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