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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글/- 묵상 글

꽃들이 스스로 의식하지 않으며 향기를 뿜듯이

by 하늘 호수 2013. 11. 26.

 

 

 

 

 

 

옛날에 믿음이 매우 깊은 사람이 있었는데 천사들까지도 그를 보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는 대단히 거룩한 품성을 지녔건만 자신이 거룩하다는 관념이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일들을 부지런히 하면서 선한 인품을 발산하고 있었다. 꽃들이 스스로 의식하지 않으며 향기를 뿜듯이, 가로등이 빛을 내듯이.

 

그의 거룩함인즉, 각 사람의 과거를 잊어버리고 지금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사람의 겉모습에 머물지 않고 그 존재의 핵심까지 꿰뚫어 보는 데 있었다. - 그러면서도 순진무구하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에는 너무도 무지했다. 그리하여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하고 용서했고, 그리고 이 점을 전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식의 결과일 뿐이었기에.

 

어느 날 한 천사가 그에게 와서 말했다.

"나를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보내셨다. 무엇이든 청하기만 하면 당신에게 주어질 것이다. 치유의 능력을 받고 싶은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친히 치유하시길 바랍니다."

"죄인들을 바른길로 돌아오게 하고 싶은가?"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저의 일이 아닙니다. 그건 천사들의 일입니다."

"덕행의 모범이 되어 사람들이 본받고 싶게 마음이 끌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관심의 중심이 될 테니까요."

"그러면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하고 천사가 물었다.

"하느님의 은총을요." 하고 그는 대답했다.

"은총만 있다면 저는 제가 바라는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안 된다. 어떤 기적을 원해야만 한다." 하고 천사가 말했다.

"안 그러면 한 가지를 억지로라도 떠맡겨야겠다."

"정 그러시다면 이걸 청하겠습니다. 저를 통해서 좋은 일들이 이루어지되, 제 자신이 알아차리는 일은 없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 거룩한 사람의 그림자가 그의 뒤에 생길 때마다 그곳은 치유의 땅이 되게 해 주도록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자가 생기는 데마다 -  그가 그 그림자에 등을 돌리고 있을 때라는 조건으로 - 병자들이 치유되고, 땅이 기름지게 되고, 샘들이 다시 솟고, 삶의 고달픔에 시달린 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성인은 이것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그 그림자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그 성인은 잊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기는 잊혀진 채 자기를 통해서 좋은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그 성인의 소원은 충분히 성취되었다.

 

거룩함이란, 위대함처럼, 스스로를 의식하지 않음이다.

 

 

- 앤소니 드 멜로 지음, 분도출판사 <개구리의 기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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