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성지
이곳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던 오지인 데다가 충청좌도와 우도, 경기도의 접경에 위치하고 있어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던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살기에는 아주 적당한 곳이었다.
신자들이 숨어들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1837년에는 성 모방 신부님이 배티 교우촌을 공소로 설정하였고
1850년에는 성 다블뤼 신부님이 조선대목구 신학교를 설립한 뒤 두 칸 짜리 초가집을 매입하여 학교 건물로 사용하였다.
1853년 여름부터 최양업신부님이 이 초가집에 살면서 전국 다섯 개 도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을 순방하는 한편 틈틈이 신학생들을 지도했다. 그 후에 메스트로 신부님 페롱 신부님, 프타니콜라 신부님이 사목 활동 거점으로 삼으셨다. 다블뤼 주교님은 이곳에서 견진성사를 집전하셨다.
1866년 병인박해시 배티와 인근 교우촌에서 수많은 순교자가 생겼는데, 기록상 34명의 순교자가 있다.
배티성지 미사시간 : 주일. 평일(화요일-토요일)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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