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늘호수 이야기/- 성지따라 발길따라

북수동성당 - 수원교구

by 하늘 호수 2022. 8. 4.

 

북수동성당

 

2000년 대희년에 수원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님께서 수원 화성의 중심인 북수동성당(구 수원성당)을 수원화성에서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81위의 순교자들과 수많은 무명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성지로 선포하셨습니다.

정조대왕의 명을 받아 다산 정약용(요한)선생께서 설계,시공하신 수원화성은 둘레가 5.743km 직경은 대략 1.8km의 성곽으로 둘러 쌓여있는 아름다운 성이며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천주교박해가 시작되자 수원과 근교지방에서 체포된 천주교인들이 이곳 수원화성으로 압송되어 고문, 처형 당해였는데 교우들은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당당히 목숨을 바쳐 순교하였습니다.

현재까지 수원화성의 박해지는 중영, 이아, 화성행궁, 동남각루, 남암문, 팔달문(남문)밖 장터, 장안문(북문)밖 장터, 그 외에도 사형터(화령전과 화서문사이),화서문, 용주사 옛포교당,  매향다리서남쪽, 행궁앞간이형옥, 동북암문, 그리고 형옥,, 19군데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방화수류정은 지붕을 십자가형으로 만들고 팔각정의 기본틀을 변형시켜 서쪽의 벽을 만들어서 서벽안에 86개의 십자가 문양을 새겨 넣은 정자인데, 이는 당시 천주학을 서학이라고 한데서 비록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저녁 석양이 질무렵에는 세상 어둠을 쫒는 광명의 상징으로 서벽에 새겨진 십자가들이 빛이 나도록 설계되어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 북수동성당 홈피에서 발췌

 

방화수류정-북수동성당 홈피 사진
방화수류정-북수동성당 홈피 사진

 

토요일에 단체로 방문했는데

마침 11시에 순교자 현양 미사가 있었다

참석하시는 교우분들도 많고

기도도 많이 하는 미사였다

성인들의 유해를 모셔놓고 촛불로 정성을 모으며 기도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

 

뽈리화랑과 뽈리신부님상

파란 눈의 애구지사, 뽈리 신부

1931년 5월, 대전에 있던 뽈리(Desideratus Poliy)신부가 북수동본당의 제 4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부임 이듬해에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수원 최초의 고딕성당인 수원성당을 건립했고,

이로 이해 발전을 거듭해 부임 당시 60면이던 신자 수는 그가 떠날 때 3,0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동안 성당 안에 '소화강습소'를 설립해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가며 한글과 조선의 역사를 가르치면서

도릭운동과 신문화 개혁운동을 펼쳐나갔다. 

일본 순사들이 수시로 찾아와 한글사용 금지를 강요했지만 굴복하지 않았으며,

꿋꿋하게 한글로 된 교리서로 신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17년 동안 북수동성당에 머무르다 해방 후인 1948년, 천안성당으로 부임했다.

얼마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양떼를 두고 목자만 피난을 갈 수 없다며 성당을 지켰고,

결국 인민군에게 붙잡혀 대전에서 총살형으로 순교했다.

 

뽈리화랑

 

뽈리화랑

 

뽈리화랑

 

십자가의 길 - 북수동성당

 

묵주기도 길 -북수동성당

 

 

 

 

뽈리신부님께서 수원지방의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마귀를 물리치는 성미카엘대천사를 주보로 정하시고

성 미카엘상을 제작하셨다.

 

북수동성당 미사시간
수원성지 순례 안내 -북수동성당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