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1990년 11월 16일, 나는 KE725편 기장을 맡았다.
서울에서 사이판을 비행하는 것인데 주말이라 신혼부부 61쌍을 비롯해 모두 165명이 탔다.
승무원은 나를 포함해 모두 8명이었다.
출발하는 서울 김포공항은 하늘이 높고 푸른,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여 주었다.
.......
도착 15분 전이었다.
서서히 강하하기 시작하는데 기관사가 말하기를,
"기장님, 착륙바퀴 유압이 이상합니다."라고 보고하는 것이 아닌가.
유압 이상으로 비행기 바퀴가 빠지지 않으면 수동으로 바퀴를 꺼내는 방법이 있었다.
몇 번 힘을 주던 기관사의 얼굴빛이 하얗게 변했다.
"기장님, 큰일났어요. 수동 장치가 안 돌아가요."
나를 포함해 모든 승무원들이 돌아가며 힘을 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만약 비행기 바퀴가 나오지 않으면 동체착륙을 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지면과의 엄청난 마찰로 상상하기 힘든 불행한 사태가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응급조치를 취하기로 했지만 승객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 했다.
"승객 여러분, 죄송합니다.
기체 바퀴에 이상이 있어 동체착륙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일단 본인들의 소지품을 모두 앞 의자주머니에 넣어주시고,
고개를 좌석 밑까지 숙여 최대한 자세를 낮춰 주십시오.
그리고 사무장의 지시에 잘 따라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기내는 금방 웅성거림과 함께 신혼부부들이 서로 울고 난리가 났다.
나는 조종간을 부기장에게 맡기고 기관사와 함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기도가 아니라 울부짖음이었고 절규였다.
더구나 승객들은 이제 막 결혼해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이들이 아닌가.
땀을 비 오듯 쏟으며 간절히 기도드리는 내 마음속에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이 부드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 (이사 41,10)
나는 '할렐루야! 아멘'을 큰소리로 연발했는데
부기장은 내가 정신이 이상해진 것으로 판단하여 나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
나는 성령충만하여 말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수동 장치를 돌려보게.
이번에도 안 되면 동체착륙을 하겠다고 관제탑에 알리게."
수동 장치를 돌리는 순간 조금 전까지 그렇게 돌려도 움직이지 않던 그 장치가
한손으로도 술술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마치 기름을 친 것처럼 바퀴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조종실에서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역사하십니다!"
<국민일보, '나의 길 나의 신앙', 2002.4.30-5.2 참조>
- 차동엽신부의 '신나는' 복음묵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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