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특강
가을을 맞이하여
악마 대학교에서는
은퇴한 명예 교수님을 초빙하여
특강을 들었다.
젊은 교수 시절,
명교수로 이름이 높았던
이 악마 교수의 특강은
생각보다는 짧았으나
뼈대만은 분명했다.
강의 내용은
'인간을 우리 자식이
되게 하려면'이었다.
"초보자가 인간을
유혹하고자 할 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인간을 고르시오.
바쁜 인간은
죄지을 틈도
가지지 못합니다."
"보통 인간들은
못 하나 가져가는 것은 도둑이 아니고
금반지를 훔치는 것은 도둑이라 하지요.
그러나 어떻습니까.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지 않습니까.
이처럼 죄 같지도 않은
죄부터 짓게 하시오.
그러면 이내 우리가 원하는
종이 되어 따라올 것입니다."
"특히 이 점을 명심하시오.
혀가 가벼운 인간들,
그들을 공략하기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입이 항시 닫힐 줄 모르고
혀를 날름날름 잘 내미는
인간보다 손쉬운 것은 없소."
학생 악마들은
"와." 웃다 말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더러는 집게손가락으로
혀를 꽉 붙드는 녀석도 있었다.
은퇴 교수의 명강의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잘 함락되지 않는 인간은
그의 친구를 이용하시오.
친구가 붙들어 주면
우리의 멍에를 쉽게 꿸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인간들은
부쩍 스피드를 좋아한다면서요?
3분 사진, 1분 라면이라는 것이
잘된다고 들었소.
인간을 벼락감투, 벼락부자 같은
환영으로 꾀시오.
그런 고속화 미끼가
최첨단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게 하나 있소.
아무리 연약해 보이는 인간이라도
무릎을 꿇고 있으면 조심해야 하오.
통회하는 인간에게는
덤벼 보았자 헛일입니다."
- 정채봉 향로1 <바람의 기별, 생활성서출판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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