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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일반/- 아! 어쩌나?

아? 어쩌나! (8) 욕심

by 하늘 호수 2009. 9. 30.

"아? 어쩌나! (8) 욕심"



Q1. 욕심
저는 욕심이 많은 편입니다. 음식을 먹어도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빨리 먹고, 맛있는 음식을 탐해 늘 과식을 합니다. 예쁘고 좋은 물건을 보면 돈도 없으면서 자꾸만 사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카드를 긁어서라도 사고 싶은 충동에 힘겨울 때가 잦습니다.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어떤 분에게 조언을 구하니 마음을 비우라고 하시는데 마음을 비우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A. 자매님 고민은 욕망과 탐욕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욕망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힘을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식욕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먹게 하는 욕구입니다.

 만약 사람이 식욕이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당연히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먹지 않으려고 하는 병적 행동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뻔하지요. 힘이 없으니 아무것도 못하고 죽기만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식욕은 사람이 하느님 뜻을 따라 살게끔 해주는 가장 기본적 욕구입니다. 성욕은 어떤가요? 가끔 지나치게 경직된 신앙관을 가진 분들은 인간이 가진 성적 욕구를 아주 부정적인 것처럼 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이 성욕이 없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세상에서 사람의 존재가 다 사라져 버리겠지요. 하느님께서 구약의 조상들에게 특별히 주신 축복이 후손 번성인데, 성욕이 없다면 그런 축복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성적 욕구는 인간의 창조 욕구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창조 욕구의 바탕은 성적 욕구 즉, 심리학자 프로이드가 말한 '리비도'입니다. 물건에 대한 소유욕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험한 인생을 살아가기엔 몸도 마음도 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추스를 무엇인가를 가져야 하는데 아무런 소유욕이 없다면, 그래서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가진 욕구들은 건강한 인생을 살도록 해주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왜 영성가들은 욕구에 대해 경고할까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욕구 역시 적절한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 선을 넘으면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적정수준을 넘어선 욕구는 '탐욕'이라고 하며,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탐욕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분들은 단칼에 무를 자르듯 욕망의 뿌리를 잘라버리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입니다.
 
 왜냐면, 사람의 욕망은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된 것이어서 뿌리가 복잡하고 미묘할 뿐만 아니라 상처투성이인 경우가 많아 무 자르듯이 했다가는 여러 가지 심리적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욕망이 지나치다 싶은 분들은 우선 자기 욕망이 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데 근본적으로 필요한 심리적 영양소'라는 것을 먼저 인지하고, 천천히 달래면서 욕망의 수위를 조절해야 합니다. 그래도 잘 안 되는 분들은 어린 시절 충족하지 못한 욕구의 상처가 깊은 분이니, 그 부분에 대한 전문적 상담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Q2. 어떤 기도가 좋은가요
 심신이 피곤해 기도로 위로받고 싶은데 기도문을 읽다 보면 괜히 짜증이 나고 힘듭니다. 바른 자세로 앉아 기도하다 보면 몸도 힘들고요. 어떻게 기도해야 편안한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A. 어떻게 기도해야 마음의 편안함을 얻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참으로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간단하고 쉬운 기도 방법은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도 즉, 영어로 표현하자면 'Non-doing pray'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기도가 편안함을 줄까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나,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할 때 평소보다 더 많은 긴장과 불안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은 심리적으로 심하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도'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도이기에 에너지 소모가 아닌 에너지 보충을 하는 시간이 됩니다. 이해를 돕고자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도는 시어머니 앞의 며느리가 아니라 친정어머니 앞의 딸이 되는 것입니다.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지향은 좋지만 밤이 되면 파김치가 되고 말지요.
 
 하지만 친정집에 놀러 간 딸은 빈둥거리면서 놀고먹기만 합니다. 보기는 안 좋지만 밀린 잠도 자고 스트레스도 풀기에 심신의 힘을 보충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 역시 따스한 친정 부모님 앞에서 쉬듯이 해야 마음의 편안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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