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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 꽃과 그림이 있는 정원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조광호 신부님의 스테인드글라스화)

by 하늘 호수 2010. 5. 1.

 

 조광호 신부님의 스테인드글라스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Miserere Nobis!

 

인간감정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얼굴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비단 눈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이야말로 그 사람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창이다.

하느님이 사람의 얼굴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창조한 것에는 깊은 뜻이 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우선 얼굴은 두부의 앞면에 존재하며 뒤를 볼 수가 없다. 이는 하느님의 오묘한 뜻으로 너무 사방으로 잘 보아서 산만해지지 말고 앞만 보고 가라는 격려의 뜻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눈, 코, 입 등이 모두 적재적소에 있어서 외형적으로 극히 제한적인 요소를 이용하셔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른 생김새를 가지도록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얼굴의 조형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만일 하느님이 사람을 만들 때 하나하나 정성들여 만들지 않고 마치 주물을 떠내듯이 대량 생산했더라면 인간 세상에는 큰 혼란이 왔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 얼굴 조형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자기가 유일한 존재임을 의미하며 특별한 존재가치를 부여받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창조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얼굴의 표정을 지배하는 것은 선으로, 안면에 있는 온갖 근육의 선이 그 사람의 표정을 만들어낸다. 직선으로 다물어진 입은 남성적이며 의지가 강한 인상을 주고 곡선적인 선이 많은 얼굴은 온유하고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즉 사람의 성격과 감정을 나타내는 얼굴의 표정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선인 것이다. 얼굴의 선에 의해 나타나는 인간의 감정은 크게 희로애락 네 가지로 나뉜다.

여기에서 인간의 여러 감정을 그림에서 찾아보면 우선 프리고나르의 그림 <그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인간의 즐거운 감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나타난 예수의 표정에서 우리는 분노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애절하고 슬픈 감정으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에서 죽은 예수를 무릎에 앉히고 하염없이 슬픔에 잠겨 잇는 성모의 표정을 들 수가 있다. 그리고 브뤼겔의 그림에 등장하여 잔치를 즐기고 있는 농민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에서는 우리의 인간의 즐거운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인간감정의 희로애락을 나타내는 것이 얼굴인 만큼 얼굴은 사람의 마음을 외부로 노출시키는 문이다. 그 문을 통해서 사람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성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볼 때 조광호의 얼굴 그림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 번째 특징은 그들 얼굴은 하나같이 구원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크게는 피조물로서의 창조자를 향한 절대적 믿음이며 작게는 화가이자 성직자인 조광호의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써 제목에서 표현한 것과 같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애원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조광호가 그릴 그림의 얼굴은 절망의 계곡에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구원의 소리를 높이는 그러한 진지한 인간의 표정이 담겨 있다.

 

두 번째 특징은 그 얼굴에는 국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조광호가 얼굴 그림에서 추구하는 것이 보편타당한 미의 원형으로서 어느 한 시대, 한 지역 사람들의 얼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신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크게 서양인과 동양인 또는 백인, 흑인, 황인으로 나뉜다. 또한 시대의 흐름에 준하여 원시인, 고대인, 중세인, 근대인, 현대인 등으로 나눌 수도 있다. 이러한 구분은 사람 개인의 다양함은 차치하고 오직 시간적인 차이, 공간적인 차이 혹은 외향의 대표적 차이에 근거하여 분류한 것인데, 복잡한 인간세상에서 조광호가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구분이 없는 보편타당한 미라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시대, 모든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인간얼굴의 원형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조광호의 그림에 나타난 얼굴의 표정들은 그의 마음의 반영인 것이다.

 

성직자의 시선으로 인간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조광호는 이러한 얼굴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두 가지 방법을 병행했는데 하나는 흑백의 강한 콘트라스트로 존재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미적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하지만 얼굴 그림에서도 그는 강직하며 속도의 변화를 머금고 잇는 거침없는 필법으로 웅장하고 강렬한 표현을 유발하고 있다. 그의 삽화에서, 혹은 그의 달력 그림에서도 그가 그린 얼굴들은 한결같이 희로애락의 감정 동요를 극적인 순간에 포착하여 표현하고 있다.

가령 노인의 얼굴 그림의 경우에는 그 노인을 통해 세상에게 항의하는 항변적인 의미가 크고 여인들 얼굴에서는 죄 많은 세상에서 연민하는 성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어떠한 얼굴을 그리는 경우에라도 그 얼굴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인생이 그림의 배경이 된다. 다시 말해 성직자의 눈으로 본 모든 인간의 생활감정이 거기에 스며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대변해서 이렇게 외치고 있다.

"Miserere Nobis!"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결국 루오의 판화 작품에 나타난 미제레제Miserere가 루오가 창조한 얼굴이라면, 조광호가 그린 미제레제는 그가 창조한 예술이자 그의 신앙고백인 것이다.

 

- 이경성, 미술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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