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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있어서 기쁜 일, 행복한 일이라는 것은 어떤 것 입니까?
자신이 원했던 일이 이루어진 것일 수도 있고, 얻고 싶어 했던 것을 얻었을 때 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이루고자 했던 성공이나 원했던 재물을 얻었을 때일 것입니다.
그리고 잃었던 건강을 찾게 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기뻐하고, 행복해 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기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지워버리고 싶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을 때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죄가 용서받기를 바라는 바람이 있고,
또 지워지기를 바라는 크고 작은 자신만의 죄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가 지나간 꿈이였으면 하고 바라며 살아 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의 죄를 사해줄 수 있다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없애 줄 그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래서 나의 죄가 없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젊었을 때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간절하고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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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은 구약 시대부터 제사 때 쓰이는 희생 제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할 때 어린양의 의식을 치렀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에서 빗겨가기 위해 어린양의 피를 대문간에 뿌리고 숨을 죽였습니다.
그 무서운 재앙의 밤에 주님의 천사들은 어린양의 피가 뿌려진 집은 그냥 지나갔지만,
어린양의 피가 없는 집에서는 맏아들이 죽어나가는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어린양의 피는 구원의 표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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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이 구약 시대부터 어린양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였습니다.
어린양이란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존재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해한 예수님의 삶은 그런 삶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에게 한 번 손을 대서 한 순간 그들의 병을 치유해 주실 수도 있고,
또 '너의 죄는 용서를 받았다'는 한 마디 말씀으로
사람들의 죄를 사해주실 수도 있는 전능하신 분이시면서,
동시에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어린양의 운명을 받아들이셔야 하는 존재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이 두가지 면을 동시에 지니셨던 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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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간단하고 쉬운 방법으로 사람들의 죄를 없애시려 하셨다면,
굳이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실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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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없애주시는 또 다른 방법으로,
그분은 바로 당신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는 그 길을 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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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자신의 어깨에 그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모습을 상상으로라도 떠올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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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서로가 서로의 죄를 짊어지는 모습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서로의 죄를 짊어지는 모습을 통해 서로의 죄를 줄여가는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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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한마디의 말로써 사람들의 죄를 없애 줄 수 있는 능력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가 서로의 죄를 짊어지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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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짊어질 수 있으려면,
우리 역시 죄를 짓고 난 후 후회하고 뉘우치는 우리의 모습을 가엾이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가엾이 여길 수 있어야 죄를 짓고 후회하는 다른 사람도 가엾이 여기면서
그의 죄를 짊어지려는 용기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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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나누어 짊어질 때,
그것은 우리에게는 희생과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면 그것은 우리의 희생과 사랑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그 누군가의 죄를 짊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깨에 메고 가신 십자가를 없애드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죄를 짊어지려 할 때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의 무게는 줄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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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우리는 더 이상 서로가 서로의 잘못과 허물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서로의 잘못과 허물을 외면하지 말고
서로의 잘못과 허물을 짊어지는 모습을 배워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때 "죄가 많은 곳에 하느님의 은총도 커갔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이 끝날 때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웠다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생을 마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지금 누구의 죄를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죄를 함께 짊어지고 가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오승원 이냐시오 신부님의 <완성하지 못한 주일 강론>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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