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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글/- 묵상 글

<침묵> 중에서.... '밟아도 괜찮다.'

by 하늘 호수 2012. 8. 25.

 

 

 

 

 

'주님, 오랫동안 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당신의 얼굴을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 나라에 온 후로 몇십번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도모기 산속에 숨어 있었을 때, 바다를 작은 배로 건널 때, 산속을 헤맬 때,

저 옥사에서의 밤, 당신의 기도하는 얼굴을 기도드릴 때마다 생각하고,

당신이 축복하고 있는 얼굴을 고독할 때 떠올리고,

당신이 십자가를 지신 때의 얼굴을 붙잡힌 날에 되새기고,

그리고 그 얼굴은 저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고귀한 것이 되어 저의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저는 이 발로 밟으려고 합니다.'

 

:

:

 

"아, 아프다."

 

:

:

 

신부는 발을 올렸다.

발에 둔중한 아픔을 느꼈다.

그것은 형식이 아니었다.

자기는 지금 자기 생애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온 것,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온 것,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과 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이때 밟아도 좋다고 목판 속의 그분은 신부를 향해 말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어 갖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다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닭이 먼 곳에서 울었다.

 

:

:

 

그 성화판에 나도 발을 얹었다.

그때 이 다리는 움푹 파인 그분의 얼굴 위에 있었다.

내가 수백 번도 더 머리에 떠올린 얼굴 위에,

산속에서 방랑할 때, 또 옥사에서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던 그 얼굴 위에,

인간중에 가장 착하고 아름다운 그 얼굴 위에,

그리고 한평생 사랑하려 했던 분의 얼굴위에,

그 얼굴은 지금 성화판 나무 판대기 속에서 마멸되고, 움푹 파여,

슬픈 듯한 눈을 하고서 이쪽을 보고 있다.

'밟아도 괜찮다.'하고 슬픈 듯한 눈초리는 내게 말했다.

'밟아도 괜찮다. 너의 발은 지금 아플 테지.

오늘날까지 나의 얼굴을 밟은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들의 그 아픔과 고통을 나누어 갖겠다.

그 때문에 나는 존재하니까.'

 

'주님,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 엔도 슈사쿠, 바오로딸 출판 <침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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