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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일반/- 아! 어쩌나?

[아! 어쩌나?] 168. 천사가 왜 화를 냈을까요

by 하늘 호수 2012. 9. 16.

 
[아! 어쩌나?] 168. 천사가 왜 화를 냈을까요



Q. 천사가 왜 화를 냈을까요

  성경 묵상을 하다 의문이 드는 내용 때문에 질문을 합니다. 루카복음 1장 20절을 보면 천사가 나타나서 즈카르야에게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즈카르야가 의구심을 드러내자 그에게 화를 냅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제 생각으로는 즈카르야의 반응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나 엘리사벳이나 모두 나이 먹은 노인인지라,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저 같아도 즈카르야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천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즈카르야 말에 까칠한 반응을 보이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벌을 가하는 것이 저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고 분심거리입니다. 간혹 성당에서도 신자 중 열심인 분들이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주님 말씀에 토를 달면 즈카르야처럼 벌을 받는다고 초등학생 가르치듯 말하는 것을 들으면 답답하다 못해 한심한 생각마저 듭니다.

 그분들은 이런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저를 나무랍니다. 정말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요? 그렇다면 정말 신앙인이란 아무리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하느님 뜻'이라고 하면 무조건 믿어야 하는 것인가요?

 
 A. 형제님의 의구심은 당연합니다. 형제님처럼 의구심을 갖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신앙인입니다. 즈카르야가 왜 천사에게 벌을 받았는가부터 생각해보겠습니다. 즈카르야가 벌을 받은 것은 자신의 인생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에 대해 과신하고 영적 존재인 천사가 전하는 하느님 말씀을 무시하는 교만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천사가 나타나기만 해도 말대답은커녕 혼비백산해서 도망하거나 혼절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가 주는 메시지를 군말 없이 수용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사람은 자신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공포를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도 이런 인간 심리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줄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사회 신흥종교 교주들이 자신이 하느님인 척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이런 공포심리를 악용한 사례입니다.

 그런데 즈카르야는 놀라기는커녕 천사를 비웃는 행동을 보입니다. 즈카르야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지적 우월감 때문입니다. 이런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 말을 경청하지 않고 자신의 지적 잣대로 다른 사람들 말을 평가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즈카르야가 자신이 천사보다 더 영적 삶을 살고 있다는 과대망상에 걸려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음 안에 '심리적 바벨탑'을 쌓은 것과도 같습니다.

 세 번째는 역설적 가능성인데, 자신이 가진 지적 무력감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환상의 미래」라는 논문에서 "자신의 무력감을 감당할만한 것으로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으로 많은 관념이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즉, 장황한 이론을 알지 못함으로 생기는 무력감을 없애고자 도피처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담 안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미숙한 상담자들은 내담자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는 이론에 근거해 내담자를 파악하고 치료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성향이 지나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낯선 것에는 눈을 감고, 자기 기만적이고 섣부른 이론을 내담자에게 뒤집어씌운다는 것입니다.

 즈카르야가 내적으로 성숙했다면 천사의 말을 섣불리 판단하고 미숙하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즈카르야의 미숙한 반응에 대해 천사는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즈카르야의 이런 성격이 곧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의 앞날을 닦을 운명을 지닌 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봐, 다시 말해 아들이 아버지를 닮아 교만해져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란 노파심에서 천사는 심하다 싶을 정도의 처벌을 가합니다. 즈카르야는 일시적 벙어리 신세가 돼 자기 반성을 많이 한 듯합니다.

 지도자는 자신이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아는 것이 적음을, 또 자신이 무지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 모르는 것에 직면했을 때는 불안하고 자신이 무지하고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시간이 지속되는 것을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즈카르야는 벙어리로 지내는 동안 이런 것들을 온몸으로 체득한 듯합니다. 그로 인해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 세례자는 "나는 주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고백하는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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