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 Jerusalem)
'평화의 도시' 또는 '평화의 근원지'라는 뜻을 지닌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는 '예루살라임', 희랍어로는 '예로솔뤼마', 시리아어로는 '우루살람' 이라 불리며, 이집트 문헌에는 '우루살리뭄' 또는 '우루슬림우'로 표기되어 있다. 이슬람은 예루살렘을 메카나 메디나와 같은 성지로 여겨 '엘쿠드르'(성지란 뜻)라고 칭한다.
4천년 역사를 가진 예루살렘은 기원전 1천 년경 구약의 다윗 왕에 의해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해졌다. BC 587년에는 바빌론에 의해 점령, 파괴되고, BC 63년에는 로마제국에 병합된다. 성경에 나타나는 헤로데가 유대 왕이 된 것은 BC 37년이다.
AD 70년에는 예수님의 예언(루카 19,41-44; 21, 20-24) 대로, 로마의 티투스 황제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고,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후 성도(聖都)로서 발전하였다.
637년에는 이슬람에 점령당화여 5백년간 지배를 받았으나 십자군의 원정으로 여러 차례 탈환하기도 했다. 1517년부터 1917년까지 4백 년 동안 터키의 지배를 받았고,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수도가 되었다.
1958년 아랍인들과의 무력충돌로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아랍인측 요르단에 속하고, 신시가지는 이스라엘에 속했다가, 1967년 6일 전쟁(1967.6.5-10)으로 이스라엘은 전 예루살렘을 장악했다.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를 건설하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겠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에 의해 거부되어 늘 분쟁과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평화와 분쟁 역사의 현장,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신앙의 원천이며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도시답게 순례자들이 끊이질 않는다.
-분도여행사, 성지순례 책자에서 발췌 -
성벽과 성문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성벽과 성문은 오스만 터키 제국의 술레이만 대제가 예루살렘을 견고한 요새로 만들기 위해 1537년에서 1542년에 걸쳐 완성했다. 성벽 둘레의 길이는 약 4,018m이다. 성벽을 따라 8개의 성문이 있는데 이 성문들은 적의 침입시 방어하기 좋도록 '나'자 형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그때 당시의 성문 가운데 야포 문, 다마스커스문, 시온 문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분도여행사, 성지순례 책자에서 발췌 -
뉴 게이트 (The New Gate)
북쪽 성벽 서쪽에 있는 문으로 1889년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의 통로를 위해 새로 만들어졌으며 성내의 기독교인 지역으로 통하는 문이다. 예루살렘 신시가지에서 가장 가까운 문으로 성문위에 망대나 방어시설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분도여행사, 성지순례 책자에서 발췌 -
다마스커스문(The Gate of Damascus or of The Column)
동쪽의 헤로데 문과 서쪽의 뉴게이트 중앙에 있으며, 현재의 문들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답다. 히브리어로 세겜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해서 '사아르 세겜', 아랍어로는 '바브 엘 아무르(원주형 기둥의 문)'라고 부른다. 로마시대에는 예루살렘의 중심 문으로 시온 문까지 웅장하고 아름다운 중심도로가 있었다고 한다.
-분도여행사, 성지순례 책자에서 발췌 -
시온문(The Gate of Zion or David)
시온 성문은 성의 남쪽 서쪽에 있다. 시온 산과 통하는 문이라고 해서 히브리어로는 '시아르 문'이라고 부른다. 아랍인들은 이 문을 통해 시온 산에 위치한 다윗 왕의 무덤으로 간다고 해서 '바브 엔 네 비다우드(예언자 다윗의 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입구 위쪽에 이 문을 세운 술레이만을 기념하는 터키 문구가 있다.
-분도여행사, 성지순례 책자에서 발췌 -
사자문(The Gate of Gethsemane or Tribes or Lady Mary or Lions) 또는 스테파노문(Stephen's Gate)
초대교회 첫 순교자 스테파노 성인이 이 근처에서 돌에 맞아 치명(사도 7,54-60)한 것을 기려 성 스테파노 문이라고 부르며,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의 집이 이 성문 근처에 있었다고 해서 '안나의 성문' 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두 마리의 사자가 술레이만 2세의 꿈에 나타나 부서진 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해서 1540년경 문을 보수했다 해서 히브리어로 '사자의 문'이라고 부른다. 원래의 명칭은 '바브 엘 고르(요르단 문)' 아랍인들은 마리아의 무덤이 문 근처, 키드론 계곡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바브 싯티 마리암(마리아 문)'이라고 부르며, 유대인들은 여호사밧 계곡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해서 '사아르 여호사밧(여호사밧 문)' 이라고도 부른다. 1920년 영국군은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개조하였고,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 때 이 문을 점령하여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분도여행사, 성지순례 책자에서 발췌 -
황금문 (The Golden Gate)
황금문은 올리브 산을 마주보며 성벽과 성전의 동쪽에 있는 유일한 문으로, 호화롭게 꾸며져서 황금문으로 불리며 '자비의 문'과 '회개의 문' 두 개로 되어 있다. 이 문은 AD 7세기에 지어졌는데 후기 전승에 따르면 현재의 문은 예수님께서 입성했던 옛 문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초기 유다 전승은 메시아가 이 문을 통해서 온다고 전했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을 준비하기 위해 이 문 가까운 곳에 묻히고자 해서 무덤이 많다. AD 1530년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터키 총독은 메시아가 다시 이 문을 통해 들어와 자기를 쫓아낼까 두려워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봉쇄했으며, 지금까지도 막혀있다.
-분도여행사, 성지순례 책자에서 발췌 -
성 스테파노 성당
키드론 골짜기
키드론 골짜기는 예루살렘 동쪽에 놓여 있으면서 예루살렘성과 올리브산을 가르는 작은 계곡이다. 올리브산 하단부에 위치한 계곡으로서 우기에만 물이 흐른다. 예수님이 황금문을 통과하여 성전에 가려면 이 계곡을 지나야 했을 것이고, 그가 자주 찾았던 베타니아에 있는 라자로의 집에 갈때, 그리고 겟세마니에서 기도하기 위해 올리브 산을 올라갈 때도 이곳을 이용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성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이 계곡을 지나 겟세마니 동산으로 갔었고, 그곳에서 배신당하여 대사제 가야파의 집으로 끌려 갈 때도 이 계곡을 지났을 것이다. 키드론 골짜기에는 압살롬과 여호사밧의 무덤을 비롯하여 야곱과 즈가리야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무덤들이 있다. 이 무덤들의 건축양식으로 보아 고대 희랍시대에 그들의 가족들이 세웠을 것이다. 키드론 골짜기는 마지막 심판이 일어날 장소로 전해지고 있다. 이 믿음으로 인해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그리고 회교도들의 거대한 공동묘지가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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