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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 성지따라 발길따라

함열성당 2 - 익산 - 전주교구

by 하늘 호수 2022. 4. 28.

함열성당

 

다시 찾은 함열성당 (2022. 4. 6 )

햇살이 좋은 오후 함열성당을 다시 찾았습니다

계절이 봄으로 바뀌니 기분도 상쾌합니다

어린이의 손을 잡고 성당으로 들어가는 수녀님의 뒷모습이 눈에 띕니다

 

함열성당

 

함열성당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군 안대동에 있던 천주교 성당.

안대동성당은 1878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블랑 신부가 전교를 시작한 뒤 1910년 전라북도 용안군 용안면 안대동에 본당이 설립되었다. 1959년 1월에 본당을 용안군 용안면에서 익산군 함열읍으로 이전하면서 함열성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안대동성당은 건물 골조만 남아 있다.

안대동성당은 전라도 천주교 포교사에서 유서 깊은 성당이다. 1878년 조선교구 제6대 교구장이던 프랑스 신부 리델(Ridel)[] 주교가 체포되어 청나라로 추방되자,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블랑(Blanc)[] 신부와 두세(Doucet)[] 신부는 전라북도 용안군 용안면 안대동[현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동지산리]으로 피신을 와 순회 전교를 시작하였다. 블랑 신부는 1880년에 서울로 돌아가 주교 대리직을 맡게 되었지만, 두세 신부는 떠나지 않고 전교를 계속하였다.

1885년 이후 조스(Josse)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있으면서 안대동성당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이때 주보 성인은 성모 성탄이었다. 제2대 베르모렐(Vermorel)[] 신부는 관할하고 있는 익산과 임피 지방 공소 일부를 담당할 신부를 임명해 줄 것을 뮈텔(Mutel) 주교에게 요청하였다. 용안이나 함열이 성당을 건립하는 데 적당하다고 제안하였다. 뮈텔 주교는 베르모렐 신부의 편지를 받고 서병익[바오로] 신부를 새로 설립할 본당 신부로 임명하였다. 베르모렐 신부는 서병익 신부를 안대동에 상주시키고, 안대동성당이 설립되었다. 그 뒤로 성당 주임 신부의 잦은 이동과 지역 통폐합으로 주임 신부가 공석이 되어 1921년까지 안대동성당은 나바위성당 소속으로 있었다.

안대동성당은 1938년 나바위성당 이약슬[요셉] 신부와 안대동 신자들이 성당을 신축하고, 허일록[다테오] 신부가 부임하면서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57년 안대동성당을 익산군 함열읍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세워지면서 함열읍에 함열성당이 신축되었다. 1958년 익산시 함열읍 와리에 본당이 신설되었고, 1959년 1월 10일 이전하였다. 이때부터 함열성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익산시 안대동은 1878년에 블랑 신부와 두세 신부가 처음 전교가 된 이래 전라도 천주교 포교 활동에서 역사가 깊고 오래된 지역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대동성당 [安大洞聖堂]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지난번 방문때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성당문이 닫혀 있어서 내부를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침 성당 내부를 수리하느라 문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문이 닫히기 전에 얼른 담아서 나온다고 서둘렀습니다
그러다가 수녀님을 만났습니다
"사진을 찍으러 왔냐고... 제대에 물을 켜면 더 아름답다"고 하시며
제대에 불을 켜 주십니다
성당문이 잠시 열려있을 때 마침 잘 왔다고 하셨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제대 형태도 독특한데 불까지 켜 주시니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불 켜진 제대 - 함열성당

 

 

 

 

성모님 머리위에 비둘기 한 마리가 편안히 앉아 있습니다

 

봄의 시작입니다. 목련은 꽃이 떨어져가고, 벚꽃은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함열성당 어린이집

오래된 성당은 대부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아동의 교육을 중시했던 신부님들의 생각이 느껴집니다.

 

(함열성당은 교육 사업 일환으로 1960년 함열여자중학교 인가를 받고 1961년 학생을 모집하여 4월 11일 개교하였다. 1971년 성당 관할 내에 있는 한센인 정착촌인 상지원공소 건물을 준공했으며, 1994년에는 ‘성심어린이집’을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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