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늘호수 이야기/- 성지따라 발길따라

되재공소의 봄 - 완주 - 전주교구

by 하늘 호수 2022. 4. 29.

되재공소

2022. 4. 27. 방문

작년 성탄절에 방문하였던 되재공소 봄풍경을 만나러 다시 찾았다

상상외로 아름다운 풍경과 성당건물을 보았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지난 겨울 공소는 찾는 이가 없어서 그런지 내부 청소가 되어있지 않아 못내 마음에 걸렸었기에

이번에는 내가 청소를 하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출발했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내부가 말끔히 청소가 되어 있어서 따로 할 일이 없어 

사진만 담다 왔다

 

 

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한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코로나 사태 전까지는 매주 토요일에 미사가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본당인 고산성당으로 다닌다고 하신다.

마을에 34가구가 있는데, 대부분 신자란다

그분은 47년정도 이곳에서 성당을 다니신단다

5월부터 실외마스크 의무착용이 폐지 된다니, 곧 토요일 특전미사가 봉헌되지 않을까 싶다

 

되재공소

되재성당

박해가 시작되면서 전국 신도들의 피난처가 되었던 고산 지방에 본당이 설립된 것은 1891년이었다.

초대본당 신부인 우도(오)신부는 차돌박이에 부임하여 성당을 설립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1893년 비애모(우)신부가 부임하여 1894년 정월 되재에 정착하여 성당공사를 착공하였다. 

그러나 동학농민 전쟁으로 1895년 가을에서야 완공하였고, 1896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대축일,

뮈텔 주교에 의해 축성식을 가졌다. 성당 건물은 한국 가옥의 전통양식인 팔작 기와 지붕의 목조와가로서

400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한강 이남에서는 첫 성당 건물이었다.

1906년 베르몽(목)신부는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신성학교를 설립하여, 1908년 태극계명학교로 개명하고, 

태극계명 측량강습소를 열어 측량기술 요원을 양성하였다.

되재본당은 1929년 진산 지방리 본당을 세웠고, 이를 발전시켜 1935년에 금산 본당을 분리 신설하였다. 

1944년에는 도시화 현상으로 교세가 감소하여, 수청리 공소로, 다시 고산 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되재성당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병화를 입어 전소되고 1954년 다시 그 자리에 공소강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종탑

 

신자석 오른쪽

예전에는 남녀가 유별하여 성당 내부에 칸막이가 있고, 남성신자와 여성신자가 분리되어 미사를 참례했다

 

제대

 

신자석 왼쪽

 

신부 묘소

 

 

 

 

성당 옆에 건물이 있는데, 그곳의 내부이다

각종 모임을 하는 강당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사제관이었을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