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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 나의 묵상

탄원의 기도

by 하늘 호수 2007. 5. 16.

 

 

때로는

기도할 때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청원의 기도도 올리곤 하지만

어느날에는 격정적으로 주님께 떼를 쓰듯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

  왜 저를 이토록 어려운 지경에 빠뜨리십니까?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 하셔서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너무 괴롭습니다.

  절 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책임지시고 알아서 해결 해 주십시오.

  불쌍한 저를 좀 구해 주십시오.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 "

 

 

눈물을 흘려가면서 주님을 원망하며 현 상태에서 구해주시라고 매달릴 때가 가끔 있습니다.

주님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괴로운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눈물과 원망의 기도를 하고 나면 곧 마음이 평온해지고 앞길이 보이는 듯 해지곤 합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런 기도를 할때마다 주님께는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불경스러운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제는 송봉모 신부님께서 쓰신 <회심하는 인간>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불경스러운 저를 위로해 주시고 합리화시키는 내용의 글을 읽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부를 발췌해서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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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잠시 우리의 기도관에 대해 반성해 보다. 먼저 두 가지 질문을 해보자.

(1) 기도는 반드시 차분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는가?

(2)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청원, 탄원의 기도보다 먼저 해야 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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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차분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는가?

기도는 우리 안에 있는 생각을 정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지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것, 곧 이상적인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다.  친밀한 관계가 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정직이다. 더구나 하느님과 우리가 아버지와 자녀 사이라면, 우리의 기도는 더더욱 정직해야 한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자녀인 우리가 당신 앞에서 힘들면 힘들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주기를 원하신다.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럽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말해주기를 바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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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청원, 탄원기도보다 먼저 해야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한 근거는 없다. 정말 고통스러울 때는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올릴 수 없다. 그런 기도는 울부짖음의 기도가 있은 뒤에나 가능하다. 하느님을 향해 소리쳐 울부짖고 나서 하느님께서 이 울부짖음에 응답했거나 응답하시리라는 확신이 들 때, 비로소 평안함을 느끼면서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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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부짖음의 기도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신뢰와 감사의 기도가 가능하다는 것은 시편 22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시편 22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말로 시작된다.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께 울부짖었던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마르 15,34)가 바로 이 시편에서 온다. 시편 저자는 괴로움에 북받쳐 기도를 올리지만 일체 감사나 찬미를 드리지 않는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할 수가 없는 것이다..........시편 저자는 괴로움으로 얼룩진 기도를 주님께 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주님께서 자기와 함께하고 있다는 확신과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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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하느님께 기도할 때 무조건 감사와 찬미의 기도부터 드려야 한다고 말하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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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는 인간의 울부짖음 앞에서 하느님의 마음이 얼마나 약한지를 보았다. 우리가 고통 앞에서 욥처럼 하느님을 원망하고 서러움과 괴로움에 북받친 기도를 드릴 때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젖은 눈을 닦아주시고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며 내적 평화와 힘을 주신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느님은 인간의 신음과 울부짖음이 당신을 향한 탄원기도가 아니라 해도 그 소리를 귀여겨 들어주신다. 야곱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일이 고되고 힘들 때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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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께서는 "똑똑히 보았고"와 "들었다"를 강조하면서 당신 백성의 신음소리를 당신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 안으신다. 그렇다! 하느님은 인간이 당신을 모른다 하더라도 깊은 연민의 마음으로 들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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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부짖는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행위이다. 그것은 "영혼의 상처에서 나오는 피와 같다." 우는 아이 떡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듯이 운다는 행위는 타인의 관심을 끈다. 울부짖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비참함을,자신에게 도움이 절실히 필요함을 호소한다.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소리는 몸이 내는 소리인바 그 소리에는 거짓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울음은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경청을 하게 하고 동정과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누가 울부짖는데 목석처럼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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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부짖는 행위가 이렇게 중요하다면 인간을 사랑으로 지으시고 자녀로 삼으신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의 울음소리에 얼마나 민감히 반응하시겠는가? 당신을 향해 울부짖는 탄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슴으로 들어주시는 하느님이시라면 당신을 향해 울부짖는 탄원은 얼마나 더 큰 헤아림과 연민으로 들어주시겠는가?   하느님은 특별히 불쌍한 이들의 울음소리를 헤아려 들으신다. 당신 스스로를 "과부, 고아, 가난한 사람들의 보호자"라고 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들이 울부짖을 때 꼭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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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이가 나에게 호소하면 자애로운 나는 그 호소를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하는 말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약함을 본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탄원기도는 인간에게는 큰 힘이 되지만 하느님에게는 가장 약한 점이 된다."고 말하였다. 하느님은 인간의 울음 앞에서 당신 존재 밑바닥에서부터 격정을 느끼시면서 함께 아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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