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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일반/- 아! 어쩌나?

[아! 어쩌나?] (2)

by 하늘 호수 2009. 9. 30.

"[아! 어쩌나?] (2)"


Q1. 너무 착한 남편
 
남편이 너무 착해서 탈입니다. 살기도 빠듯한데 친인척 대소사라면 발벗고 나섭니다. 말리자니 악처란 소리를 들을 것 같고 그냥 두자니 답답해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착한 남편을 미워하는 제가 문제가 많은 사람인가요? 남편은 어린 시절 시아버지께서 바람이 난 통에 가정을 돌보지 않아서 시어머니는 우울증을 앓으셨고, 남편은 동생들을 돌보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A. 사람이라면 다 문제를 갖고 살지요. 그러나 자매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봐서는 남편분이 심리적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남편분과 비슷하게 지나치게 헌신적인 삶을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가족 혹은 친한 사람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발벗고 나서는 사람들…. 이런 분들은 성인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실제로 심성이 고운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지나치면 그 사람의 마음을 탐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 그물화(Family Enmeshment)'란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면 남은 가족 구성원 사이에 아주 심각한 과잉밀착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 한 아이는 가족의 보호자 즉, 작은 부모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런 때 많은 분이 그분을 두고 '효자다''효녀다'하고 말들을 하시는데 정작 자신은 정체성을 상실하는 일이 생깁니다. 부모에게서 충분히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을 때 애어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외적으로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만 내적으로는 늘 공허하고 외롭고 혼란스러운, 두려움에 시달리는 삶을 삽니다. 마치 훈련소 병사들이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하고 그냥 전선에 투입된 것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사는데도 자신감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삶의 형태를 지닌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되찾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어린 시절 상실했던 감정들을 다시 살리면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배려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막내 노릇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랑과 관심을 받는 시간을 갖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약입니다.
 


Q2. 진짜인가 가짜인가
 성당에 아는 자매님이 자신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 이제는 마음의 분노도 없고 오직 평안함만 있을 뿐이라고 하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과 같이 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분에게 조언을 구하고픈 마음도 없고 그분 삶이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고 가식적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제가 그분을 불편하게 보는 것이 어떤 문제인가요?
 
 A.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 이제는 마음에 분노도 없고 평안하기만 하다고 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개중에 어떤 분들은 마치 모든 것을 초월해 도인이 된 듯이 행동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분들을 대하는 내 마음이 편한가 불편한가로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언할 수가 있는가 하면 머리로는 알지 못하는 것을 마음은 느끼기 때문입니다. 즉 정말 마음의 평안함을 얻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편안함을 주지만, 가짜들은 답답함과 무엇인지 고집스럽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평안함을 얻지도 못했는데 왜 그런 척을 하고 사는 것인가? 무능력한 자기 자신을 보느니 차라리 도인인척 무엇인가 마음의 평안함을 얻은 척하는 것이 모양새도 그럴듯하고 다른 사람들 주목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열등감과 허영심이 소위 도인 콤플렉스를 만들어내는 원인입니다. 그러면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심리학자 융은 '인격 내부의 독재'라는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정신 안에서 하나의 구조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큰 힘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다른 구조에서 힘을 빼앗으며 정신에 들어오는 새로운 에너지를 독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한 구조는 더 강해지고 약한 구조는 더 약해지는 정신적 불균형상태가 됩니다. 문제는 이런 구조는 언제든지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극단적 상태는 모두 그 대립물을 내포하고 있기에 정반대의 가치로 전환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마음의 완전한 평안함을 얻은 듯 도인이 된 듯이 착각하는 상태는 언제라도 뒤집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겸허함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심리적 부작용을 예방하려는 사전조치라는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마음에 불편함을 주는 그런 분들은 가까이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doban87@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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