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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 성지따라 발길따라

솔뫼성지와 합덕성당을 다녀왔습니다

by 하늘 호수 2010. 4. 14.

 

 

 

솔뫼 성지

 

충청도 내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솔뫼는 ‘소나무로 이루어진 산’, 곧 송산(松山)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를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 하였다. ‘내포’는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어 배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는 장소이다. 내포를 비롯하여 서해안 여러 지역에는 1784년 이승훈 세례 이전부터 중국으로부터 건네지는 서학 내지 천주교 문화와 신앙을 접하고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확산되었던 실학사상의 분파인 서학이 내포 선비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내포의 서학자들은 서울의 실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내포의 양반, 중인, 서민 등 모든 계층에서 천주교로 발전하였다.

 

이곳에서 1821년 8월 21일 한국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탄생하셨으며 박해를 피해 할아버지 김택현을 따라 용인 한덕동(현 골배마실)으로 이사 갈 때인 일곱살까지 사셨다.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에 이어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1846년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과 어머니 고 우술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대건은 10세 전후인 1830년경에 솔뫼를 떠나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용인 산중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1836년에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와 만주에서 수학을 하였다.
1845년에 한국인 최초로 천주교 사제가 되었으나,

이듬해에 국사범으로 체포되어 9월 16일에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순교자 김대건 신부님은 1925년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복자품에 올랐고,
1949년에 한국 천주교회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정해졌으며,

1984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솔뫼는 송산, 소나무로 이루어진 산을 말하는 순 우리말이랍니다

저 소나무 중에는 김대건신부님께서 태어나실 때 서 있던 소나무도 있겠지요

 

  

 

  

 

성전 제대

 

오두막 성체조배실

외형도 예쁘지만 아늑하고 따스한 조배실은 정말 좋아요

오래 머물지 못함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십자가의 길

 

제15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묵상합니다

 

사랑하올 예수님, 당신의 삶은 늘  '자기 비움'이셨습니다.

당신의 부활 또한 비움을 이 세상에 드러내시는 것임을 압니다.

빈 무덤은 자신을 모두 비우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비우시고 아버지 하느님으로 채우신 예수님,

저희 삶도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 주님으로 채우게 하소서. 

 

 

 

 

 

 

 

 

솔뫼성지 가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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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덕성당

 

합덕성당은 넓은 내포평야가 사방으로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우뚝 서있다.

성당 넓은 터를 감싸고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팽나무 등이 성당 역사를 말없이 대변해주고 있다.
합덕본당은 대전교구에서 제일 먼저 설립됐으나 성당은 공세리성당에 이어 두번째(1929년)로 완공됐다.

충청남도 문화재 제145호다.

서양식 고딕 건물로 종탑이 두개인 것이 공세리성당과 다르지만 성당 내부는 비슷한 점이 많다.

공세리성당을 설계하고 지은 드비즈(한국이름 성일론) 신부가 합덕성당도 설계했다. 
 

합덕성당은 제7대 페랭(1921~1950년 재임, 한국이름 백문필) 신부 재임 때 건립했다. 200평 규모 붉은 벽돌 건물로 당시 돈 1만원이 넘는 공사비가 들어갔다. 이 돈은 쌀이 귀하던 당시 쌀 1800가마에 해당한다. 성당을 짓고자 중국 기술자들을 불러왔으며, 신자들은 멀리서 점심을 싸가지고 와서 노력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성당 완공식 때는 인근 마을 비신자들까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합덕본당에 30년간 재임한 페랭 신부는

100년이 넘는 본당 역사에서 신자들 기억 속에 가장 깊이 남아 있는 사제다.

 


합덕본당은 한국교회 초창기부터 교우촌이 있었으며, 인근에 솔뫼성지와 신리성지, 이존창생가터가 있는

지역적, 역사적 여건 때문인지 특히 성소 못자리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사제 33명을 배출했으며, 수도자까지 합하면 100명이 넘는다.

 

사람이 만일 보천하를 얻을지라도 제 영혼에 해를 받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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