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신비를 특별히 기리는 날입니다.
성체성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날 저녁, 제자들과 함께 가지신 최후의 만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우선 최후의 만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의 만찬은 어떤 만찬이었습니까?
그 만찬은 우선 슬픈 만찬이었습니다.
그 만찬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마지막 만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대 받은 제자들은 그 만찬이 어떤 만찬인지, 그 만찬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모르는 그런 제자들을 위해, 스승이 베푼 마지막 만찬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스승의 안타까움이 서려있는 만찬, 그 만찬이, 그 최후의 만찬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 만찬은 비참한 만찬이기도 했습니다.
그 만찬에 초대 받은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모두가 그분이 사랑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곧 그 분을 떠나갈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 그분의 수제자,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 역시 그 분을 사랑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승께서 가장 힘든 시간을 맞이했을 때에는 모두 그 분을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그 자리에는 스승을 팔아넘길 제자, 그 분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제자인, 유다 이스카리옷도 있었습니다.
그도 그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을 위해 마지막 만찬을 베푸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반을 당하는 스승, 그 스승이 만찬의 주인공이었기에,
또 그 배반할 제자들, 그들이 그 만찬에 초대받은 손님들이었기에, 그 만찬은 비참한 만찬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찬의 음식은 무엇이었습니까? 빵과 포도주였습니다.
그 빵과 포도주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스승의 살과 피였습니다.
그러기에 그 만찬은 자신을 배반할 제자들에게, 또 자신을 팔아넘길 제자에게까지,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준 만찬인 것입니다.
배신당할 줄 알면서도, 그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는 스승이 베푼 마지막 만찬,
바로 그 만찬이, 그 최후의 만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세우신 성체성사는 인간의 배반 위에 세우신 하느님의 사랑의 성사인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인간의 사랑에 하느님의 사랑이 합쳐져서, 또 하느님의 사랑이 더해져서 이루어진 성사가 아니라,
인간의 배반위에 하느님께서 사랑을 쏟아 부어서 만드신 성사인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 슬프고 비참한 만찬이, 그렇게 슬프고 비참하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 슬프고 비참한 만찬이, 우리의 기억에는 아름다운 만찬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시는 우리도,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밖으로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 중의 하나는, 사랑의 다른 이름인 용서입니다.
- 오승원 이냐시오 신부님의 <완성하지 못한 주일 강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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