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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것'과 '사는 것'이 하나로 일치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하는 것'과 '사는 것'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평범한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대한 희망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인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기도하며 살아왔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하고도 나의 삶이 그리 많이 변화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기도를 통해 사람이 한 순간에 변화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서서히라도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도 변화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만이라도 변화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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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의 신앙이 깊어지고 성숙되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나의 신앙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저 늙어만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에 대해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의 신앙이 깊어지고 성숙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신앙이 그냥 늙어만 가고 있다면 그처럼 안타깝고 슬픈 일도 없을 것입니다.
나의 신앙이 나의 육체와 함께 그냥 늙어만 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일 것입니다.
저도 이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릅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사는 대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변화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순수한 지향을 갖고 기도한 대로 살지 못하고, 그저 살아가는 대로 기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나 사는 대로 기도하는 사람!
이 모두 기도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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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도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기도하게 됩니다.
사람은 기도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그저 사는 대로 기도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삶과 기도에 대해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 자신은 '기도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사는 대로 기도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란 단순히 삶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진실한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하느님께 전달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에는 목소리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이 담겨져 있어야 하고,
영혼의 울림이 있어야 합니다.
진실이 담기지 않는 말에는 그 울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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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울림이 전해지는 기도,
또 순간순간 진실한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은 그런 진지한 기도를 할 수 있어야
그 기도가 우리의 영혼을 다스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기도가 나의 삶을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나의 기도가 나의 삶을 감싸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기도가 나의 삶을 감싸 줄 수 있고, 이끌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기도를 통해, 기도가 나의 삶을 감싸주는 그런 행복한 삶에 조금씩 적응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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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승원 이냐시오 신부님의 <완성하지 못한 주일 강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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