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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이야기/- 성지따라 발길따라

솔뫼성지

by 하늘 호수 2015. 5. 30.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하여 순우리말로 ‘솔뫼’라 이름 붙여진 곳으로,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탄생하신 장소이다.
증조 할아버지 김진후(비오 1814년 해미에서 순교),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안드레아 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 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1846년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 신부님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튼 장소로,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이곳(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당시에는 면천 고을 솔뫼)에서 1821년 8월 21일 태어났다.
그러나 이미 증조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가 순교한 천주학 집안이어서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었고,

또 어느 때 새로운 박해가 닥칠지 몰라 할아버지 김택현은 대건이 7살 되던 해에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이라는 산골로 이사하였다.
김대건 소년은 그곳에서 15세 때인 1836년 모방 신부님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토마스)과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고

상해(上海) 진쟈상(金家巷:김가항) 성당에서 고 페레올 주교님으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1845년 조선에 입국한 김 신부님은 선교활동에 힘쓰는 한편 외국 선교사들을 영입하기 위해 힘쓰다 1846년 6월 5일 순위도 앞바다에서 체포되었다.

1846년 9월 16일 서울 한강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언도받고 순교하였다.
사제 생활 1년 1개월 만의 일이었다.

1925년 7월 5일 복자품, 1984년 5월 6일 가톨릭 교회의 성인품에 올려졌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조선 최초의 방인사제이며 현실을 직시하고 진리를 외치던 선각자였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양학 유학자이며 조선의 최장거리 여행자이고 연평도에서 상해까지 항해한 최초의 서해 항로 개척자이기도 하다.
1845년 초 우리나라 최초로 조선전도를 만들었으며, 저서로는 21편의 서한이 있고, 한국 교회사에 관한 비망록 등이 있어 79위 시복자료가 되었다.

1906년, 당시 합덕 성당의 크램프 신부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순교 60주년을 맞이하여 김 신부님의 생가터를 고증하였고,

1946년 순교 100주년을 맞아 순교 기념비를 세우면서 성지는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된 솔뫼성지는,

1만여 평의 소나무 군락지와 더불어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가 복원되었고,

기념관과 성당, 솔뫼 아레나(야외공연장 겸 야외성당), 순례자 식당, 그리고 넓은 주차장을 갖춘 가운데,

광활한 내포 평야의 한 복판에 자리하면서 한국천주교회 안에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고 있다.

-솔뫼성지 홈피에서 옮겨온 글-

 

 

생가터

 

 

성 김대건안드레아 사제

 

성 안드레아 김대건 사제(1821-1846년)는 충청도 솔뫼의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주와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이 드러났다고 한다.

15세 때인 1836년에 모방 신부의 주선으로 마카오로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1845년 1월에 죽을 고생 끝에 압록강을 건너 귀국하는 기쁨을 얻는다.

울에 도착한 후 그는 극도로 건강이 나빴으나 건강이 회복되기도 전에 전교신부를 영입하려는 목적으로 다시금 상해로 떠난다.

풍랑으로 인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상해에 도착한 그는 1845년 8월 17일에 김가항에서 페레올 고주교 집전으로 서품되는 기쁨을 얻었다.

같은 달 31일, 고 주교와 안 신부를 모시고 충청도 나바위에 상륙하여 선교활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한편 그는 만주에서 기다리는 메스트로 신부 일행을 입국시키려고 활약하던 중

1846년 6월 5일 밤에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그의 행적이 세상에 알려졌던 것이다.

성인은 수차례에 걸쳐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며,

마침내 김대건 신부는 사제생활 1년 1개월만인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니, 이때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께서 김신부를 비롯 79명의 순교자를 시복하시고,

비오 12세는 1949년 11월 25일에 한국에서 선교하는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선언하였으며,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5월 6일에 서울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을 거행하시고, 그를 한국의 대표 성인으로 삼으신 것이다.

-옮겨온 글-

 

 

솔뫼는 역시 소나무가 참 많다.

 

아레나 광장에서 올려다 본 십자고상

 

성당

 

 

 

작고 아담하고 예쁜 성체조배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솔뫼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시어

김대건신부님 생가터에서 기도하시고

아시아 청년들과 만나셨다.

 

***

 

 

2015년 5월17일 목5동 성당은

 매년 열리는 일치의 날 행사를 전신자가 함께 하는 솔뫼성지순례로 정하고

1,600여명의 교우가 40여대의 버스를 타고

솔뫼성지에 도착했다.

 

아레나 광장에서 감격스럽고 은혜로운 미사를 봉헌하고

성가대의 성가공연이 있었다.

 

조금 덥기는 했지만,

많은 신자가 무사히 성지를 순례하고 아름다운 하루를 보냈다.

 

 

 

여기 보이는 성작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사용하시고 남기고 가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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